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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한국소설

최은영 작가 첫 장편 소설 밝은 밤, 여성의 삶이란

by 로그라인 2023. 1. 17.

연말연시가 무기력하게 흘러가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꽤 힘든 나날이었다.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고, 산다는 것에 물음표가 뱀처럼 이어졌다. 말로만 듣던 우울증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나마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밝은 밤>(문학동네, 2021)이 작은 위로가 됐다.

소설 밝은 밤의 주인공은 서른두 살 이혼녀 '지연'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지연은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희령'에서 삶을 이어간다.

희령에서 지연은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엄마의 인생도 다시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이어갈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최은영 작가 프로필

1984년 경기 광명 출생.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13년 작가세계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이 있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밝은 밤』은 2020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으로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중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쇼코의 미소>를 쓴 작가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
책표지

소설 밝은 밤 줄거리

이지연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부모는 집안의 망신이라며 그녀를 타박하고 이혼을 했는데도 사위 편만 든다. 그러니 지연은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조차 그렇게 바라보는데, 서울에서 어떻게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겠는가. 

심지어 엄마는 지연에게 어떻게 했길래 남편이 바람을 피우냐고, 참고 살면 되지 뭐가 그리 대수냐고 나무랄데마다 지연은 더이상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깊어간다.  

책속 문장
엄마는 일평생 딸에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지연의 엄마는 남편 말이면 무조건 따르야 하고 복종해야 된다는 관념을 가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주머니다. 남편이 밥 차리라면 밥 차리고, 남편이 누워라고 하면 아닥하고 눕는 그런 여자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령에 있는 천문대에서 연구원 자리가 나서 지연이 서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연은 거기서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할머니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지나온 증조할머니의 삶은 할머니를 통해 그대로 지연에게 관통되면서 지연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반추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피난 길에서 강아지와 헤어져야 했던 할머니 가족에 대한 묘사
피난 길에서 강아지와 헤어져야 했던 할머니 가족

소설 밝은 밤 독후감

밝은 밤을 읽어보면 최은영은 천생 작가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묘사는 사실적이고, 그 시절 겪어야 했던 어김없는 사실들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눈물샘을 폭발하게 한다.

젊은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운명과 기억에 대하여
인간의 운명과 기억에 대하여

밝은 밤은 지연이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삶을 반추함으로써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소설로 읽힌다.

일종의 여성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밝은 밤은 그래서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도 페미니즘 소설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한다. 등장하는 남자는 죄다 나쁜 놈이고, 생각 없는 대부분의 여자도 모두 나쁜 년으로 보인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떻게 진일보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생각 있는 여성들만의 연대로는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내일모레가 설 연휴이다. 아들딸에게 이 소설의 일독을 추천해 봐야겠다. 

아참, 이 소설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가 오버랩된다. 두 작품 모두 근현대사를 산 여성 가족들의 이야기가 소재이기 때문이다. <시선으로부터> 보다 밝은 밤이 훨씬 사실적인 은유로 다가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짧은 리뷰를 쓰는데 여럿 날 밤이 걸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함이 지배하기도 했거니와 리뷰를 쓰기에는 너무나도 묵직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기나긴 어두운 밤을 건넌 지연은 이제 밝은 밤을 맞이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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