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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상/인문교양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이충녕의 일상 철학법

by 로그라인 2023. 3. 7.

이충녕의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위즈덤하우스, 2022)는 "작은 의미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인생 철학법, 희미한 삶의 기준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줄 철학자들의 문장들"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책이다. 정작 철학자들의 문장은 별로 없었다. ㅋ

사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다 보니 철학의 쓸모에 대해서는 시큰둥하게 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인문 교양서적에 손길이 간다. 세상이 워낙 혼탁하게 정신없이 돌아가니까. 미디어는 편향된 뉴스로 도배되고 기껏해야 먹방이나 막장 드라와 예능, 가십거리가 온통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던가.

여담으로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면 제일 큰 바보는 단연 유재석이다. 채널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은 하긴 하는데, 요즘 청춘들이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분의 싹쓸이 기세를 보면 문어발 대기업의 행태나 다를바 없다. 유재석 뒤로도 식상하고 올드한 자잘한 바보들의 행진만 끊임없이 이어지니까 텔레비전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져 제로로 수렴하는 거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변함없이 텔레비전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믿고 달리나보다. 

저자 이충녕 소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수학 중이다. 일상과 철학 사이에서 연결성을 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이 물질이나 경제적 조건의 관점에서 설명되는 시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생각, 감정, 느낌, 미적 경험 등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한다.
사소한 경험 안에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는 심심함, 귀여움, 사랑 등 일상적인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실존주의, 심리철학, 인지과학 등이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 분야를 두루 익히기를 추구하며 공부 중이다.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하고 있다.(책날개에서 그대로 인용)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수학 중이라고 하는 것 보니까 아마도 박사과정생으로 추측된다. 그 지난한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책을 내는 것을 보니, 또 유튜브까지 운영하는 것을 보니, 저자는 분명 부지런한 연구자로 추측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유튜브는 아예 보지 않으니까 충코의 철학이 어떤 채널인지는 예단키 어려우나 일단은 유감이다. 내게는 좀 이상한 편견이 오래전부터 있다.

미디어에 나오는 닥터나 유명 인사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닥터는 처방전으로, 예술가는 작품으로, 법관은 판결문으로, 교수는 논문으로 말을 해야 되는데, TV에 나와서 연예인처럼 떠들 시간이 과연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이 부지런한 천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천재가 부지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생각들은... 리뷰

책표지
책표지

어찌 되었건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쓴 교양서적이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를 쭉 훑어보면 일상의 소소함에서 철학하는 방법을 찾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공감가는 부분은 일상의 소소한 키워드에서 철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을까"라는 꼭지를 보면, 사랑에 대해 보다 깊은 사유를 할 수도 있겠다.

"미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네가 필요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저자 이충녕은 자본주의적 소비의 패턴이 현대적인 사랑의 패턴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주장한 에리히 프롬의 논거를 빌려 사랑을 분석하면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상(사랑)을 찾아 헤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을 지키는 동시에 건강한 동반자적 관계를 통해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소하는 길을 제시한다.

어렵다. 현실에서 이상적인 사랑을 통해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소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온 인생을 통해 노력해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어면 그래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라는 자각이 든다.

광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BTI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인상적이다. MBTI가 그렇게도 유행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이렇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성격 유형에 따라 ‘이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수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격 핑계되면 편하지 않던가?

이처럼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는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에서 철학의 싹을 틔울 나갈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명상이나 죽음의 세계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을 들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어, 이 사람,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맞아?라는 생각도 든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논리적인 분석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느니, 임사체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까지 끌고 와서 사후 세계에 대해 더 다양한 견해에 열린 자세를 갖는 게 더욱 합리적이라는 주장들이 그렇다. 대체의학처럼 대체철학서 같기도 하고 아리까리하다. 

아무튼, 번잡한 세상에서 일상을 신선하고 깊은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를 느끼고 계신 분들에게 비판적인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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