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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상/시와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 줄거리, 폴 칼라니티의 생과 사랑

by 로그라인 2023. 6. 14.

삶의 의미를 찾아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를 읽으면서 눈물샘이 몇 번이고 터졌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책으로 내다니, 내가 읽은 논픽션 중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슬프기만 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모자란 시간과 싸우는 절박함, 중요한 얘기를 꼭 전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삶의 의미와 직접적으로 부딪치기 위해 예일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 마지막 해, 그에게 암이 찾아왔다.

폴은 삶의 마지막 두 해를 보내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필사적으로 찾았고, 그 한 방편으로는 이 책을 썼다. 그는 허락된 시간 안에 결코 도달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하루하루 나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했고 그에 맞서는 용기도 행동으로 보여줬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를 읽고 나면 폴 칼라니티가 고민했듯이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그 의미를 쫓아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딸이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너무 슬픈 이야기일 것 같아서 오래도록 손이 가지 않았는데, 요즘 딸의 방에서 컴을 하다 보니 책에 자연 손이 갔다. 딸은 책의 마지막 장에 짧은 감상평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폴처럼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행동에 동기가 확실한 사람,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자신과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책표지
책표지

폴 칼라니티의 짧은 생애(줄거리)

프롤로그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첫 문장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스탠퍼드 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는 몇 개월만 수련을 끝내면 대학 교수 임용을 코 앞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다.

"나는 CT 정밀검사 결과를 휙휙 넘겼다. 진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다.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검사 결과를 수없이 검토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스탠퍼드 영문학도 시절

아버지와 삼촌, 형이 모두 의사였지만 폴 칼라니티는 의사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폴은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었고,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끌려 영문학을 선택했다. 문학이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에 대하여,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 학위과정에 몰입했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가 너무 많아 공부를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스탠퍼드의 영문학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하지만 폴은 석사 학위 논문을 마치면서 문학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반과학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의학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마침내 폴 칼라니티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탠퍼드 의예과 과정을 밟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HPS 학위)도 공부한 후, 예일 의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이후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예일 의과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삶의 의미와 인생과 죽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들을 폴이 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예일 의과대학원

시체 해부 실습과 산부인과 수술, 종양외과 수술 실습 장면들은 한 편의 매디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문장은 문학적이면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접 경험해야만 하는 한 인간의 실감도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출산하자마자 죽은 쌍둥이를 보며 폴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포조의 대사를 떠올린다. 나는 포조의 대사를 읽으면서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는데, 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포조의 대사가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와 뜻, 극작가의 해석

고도를 기다리며, 20세기 부조리극의 대표작 사뮈엘 베케트의 (민음사, 2000)는 1939년 2차 대전 당시, 작가가 남프랑스 보클루주의 한 농가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작가 자신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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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원 4년을 마치고 폴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근무 일정이 좀 더 여유롭고 연봉도 더 높고 스트레스는 덜 받는 전공 분야를 뒤로 하고 신경외과를 선택했다. 폴은 생사의 경계에서 가차 없이 완벽을 추구해야만 하는 신경외과의 소명의식에 이끌렸다.

스탠퍼드 레지던트

폴은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신혼이었던 루시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서 스탠퍼드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흘리는 눈물 속에 있었다.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아 질식할 것 같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폴이 최고참 레지던트가 되었을 때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뇌 수술은 불과 1~2밀리미터 차이로 생사가 갈리고 속도에서도 생과 사가 결정난다. 신경외과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분야인 것이다. 폴은 핵심적인 수술은 대부분 통달했고, 연구 성과로 권위 있는 상도 여러 개 받았다. 

폴을 채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전국 곳곳에서 왔고, 스탠퍼드 대학도 폴을 교수로 채용하고자 했다. 바로 그때,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환자들을 진료하고 사망 선고를 하거나 완쾌를 축하기도 했던 자신의 방에서 다른 의사로부터 암 진단을 확정받았던 것이었다. 

에필로그

1977년 태어난 폴은 2015년 3월 9일 월요일,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폴이 암 진단을 받고 22개월이 흐른 뒤였다. 폴은 12년 전 아내 루시와 사랑에 빠졌고, 8개월 전 딸 케이디를 낳았다. 

폴 칼라니티는 암 진단 후, 화학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예후가 비교적 좋아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통증을 느끼면서도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 디디며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각주:1]를 반복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폴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병원에 복귀하여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수술을 집도하며 레지던트 생활을 완벽하게 마쳤다. 투병 기간 동안에도 폴은 유머를 잃지 않았고 나아가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7년 레지던트 생활의 정점인 수료식이 열리는 아침, 폴이 옷을 차려입고 있을 때 갑자기 지독한 매스꺼움이 몰려왔고, 녹색 담즙을 토하기 시작했다.

폴의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폴의 정신력은 죽기 직전까지 명료했다. 폴은 죽음의 순간, 스스로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아내 루시에게 부드럽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가나 봐. 난 준비됐어." 잠시 후 마스크가 제거되었고 모니터가 치워졌다. 얼마 후 폴은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폴은 언제나 준비가 철저했다. 매순간 경계하는 삶을, 매순간 정진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도 그답게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에필로그는 아내 루시 칼라니티가 썼다. 루시의 문장은 담백하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행간에 넘쳤다. 눈물 없이는 읽기 힘든 문장들이었다. 

폴 칼라니티가 작성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딸에게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아마 케이디는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 못할 것이다. 과거만 남아 있는 아빠와 아주 짧은 시간을 보낸 딸에 대한 미안함, 그래서 더욱 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 한 아빠의 간절함이 배어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숨결이 희망이 될 때, 마지막 문장

세상 모든 아빠의 마음을 압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아내 루시와 케이디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이 책에 대한 독자 리뷰

 

[서평] 숨결이 바람 될 때 줄거리와 의미 – 플롯피아

숨결이 바람 될 때 서평 서른 아홉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는 남겨진 이들에게 끝없는 사랑과 간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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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 나오는 구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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