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상/인문교양

우석훈의 '슬기로운 좌파생활' 에세이

by 로그라인 2022. 8. 5.

우석훈의 좌파 생활 에세이, 좌파로 사는 것도 괜찮다

우석훈의 슬기로운 좌파 생활(오픈하우스, 2022)은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이갈리테리언(egalitarian)의 시각에서 일상생활을 해보자고 청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저자는 앞으로 한국사회는 취미 생활 수준에서 좌파 활동을 하는 청년이 최전선이 될 것이고, 미래는 거기서 시작될 거라는 강조한다. 슬기로운 좌파 생활은 경제학자 우석훈의 이 시대 청년들에게 띄우는 위한 좌파 생활에 대한 신선한 에세이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프로필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저서로 <88만 원 세대>, <당인리>, <펜데믹 제2 국면> 등이 있다(책날개)

이 책의 날개에는 저자가 이렇게 간단하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지만, 우석훈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저서들을 읽어본 바로는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할지 몰라도 속마음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여린 사람이다. 저서도 매년 서너 권씩 출간해서 아마 이 책이 그의 50번째 책쯤 되는 것 같다. 

슬기로운 좌파 생활

우석훈의 책을 읽고 나면, 침침하게 보이던 시력을 조정해서 새로운 렌즈를 낀 기분이 든다.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시각은 편향되기 일쑤이다. 우석훈의 책들은 그 편향된 시각을 조금이라도 조정해서 우리 사회의 이면들을 잘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좌파는 멸종 직전이다. 좌파의 집권 혹은 주류화, 이런 건 꿈도 꾸지 않는다. '좌파정권'은 보수의 구호 속에서만 존재한다. 전 세계 선진국들을 돌아보시라. 우리처럼 아예 명맥도 유지하기 힘든 나라가 어디 있는가? 가장 낮은 수준의 좌파 활동인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이 필요한 순간이다."(109쪽)

저자 우석훈은 한국에서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종교 중 7.9%인 가톨릭 정도의 비율이며 이보다 더 낮은 채식주의자보다는 좌파 생활이 덜 힘들다고 보았다. 그래도 일종의 소수자인 좌파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머와 명랑함, 낭만과 여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금기어 중의 금기어다. 이 단어를 쓰는 경우는 보수가 진보를 몰아붙일 때뿐이다. 그런데 우석훈은 '저는 좌파인데요'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좌파를 취미활동으로 하자고 한다. 그의 우직함에 박수를 보낸다.

과격하고 신념으로 똘똘 뭉친 투쟁하는 좌파가 아니라 취미생활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무겁고 비장한 좌파활동으로는 생존은커녕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 자신은 매일매일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왔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없으니 취미 생활만으로도 좌파를 돌아봐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는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낄낄거리며 봤다. 읽을수록 투쟁과 희생 속에서 자라난 좌파의 본령이 가진 무게감과 엄숙함을 버리고 가볍게 취미활동으로 좌파 생활을 하자고 하는 이면에는 시대가 변했으니 좌파의 생존법도 변해야 한다는저자의 절실함이 느껴진다.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도 되나 싶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안심이 된다.

책표지
책표지에 빨강색을 의도적으로 썼다.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를 자처하는 우석훈

슬기로운 좌파 생활의 문장들

""이갈리테리언, 21세기 좌파의 본질은 평등주의자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고, 평등하다고 믿는 것, 그게 좌파다."(109쪽)

"나는 좌파로서, 이갈리테리언으로서, 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믿음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10쪽)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 20세기에 비하면 이제 위험하지 않고, 사람들을 웃기는 방식으로 당황시키는 퍼포먼스 같은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직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좋아서 한다는 점에서 좌파 생활이 취미가 아닐 이유는 없다. 그렇게라도 좌파는 멸종되지 않아야 하고, 그 유전자는 계승되어야 한다."(300쪽)

"혁명의 시대는 갔어도 취미의 시대는 아직 가지 않았다."(302쪽)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

좌파의 본질이 평등주의자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은 여전히 너무 비현실적인 이상이긴 하지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평등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직장에서는 아랫사람(단어부터가 불평등하긴 하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민주주의는 늘 가정의, 직장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좌파로서의 취미생활은 어떤가. 취미생활에 신념이 들어설 여지는 좁다. 취미활동의 9할은 재미다. 스스로 뽀대만 좀 나면 된다. 목숨 걸 일도 없다. 가볍게 시작하고 하다가 쉽게 그만둬도 별 거 없다. 적당히 즐기면서 좌파로 살아가면 된단다. 참, 저자는 제명을 '나는 좌파다'라고 하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슬기로운 좌파 생활>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슬기롭지 않아도 된다.  자, 우리 그냥 좌파 생활을 취미로서 즐겨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