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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고전소설

이청준 단편집 병신과 머저리, 퇴원 해설

by 로그라인 2022. 8. 14.

이청준과 중단편집 병신과 머저리 

이청준은 여섯 살 때 세 살 난 막냇동생이 홍역을 앓다 죽었다. 반년쯤 뒤 맏형이 폐결핵으로 죽었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희망으로 상징되는 4·19와 좌절로 귀속되는 5·16 쿠데타를 연달아 겪었다. 

이청준은 "문학 욕망은 애초 우리가 사는 현실 질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자가 그 패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구해내기 위한 위로와 그를 패배시킨 현실을 자기 이념의 질서로 거꾸로 지배해 나가기 위한 강한 복수심에서 비롯된다."(지배와 해방, 1977)고 했다.

병신과 머저리는 이청준이 발표한 중단편 열두 편이 실렸다. 그의 작품들은 이제 고전이라고 할 만큼 읽기가 모호하고 지루하다. 언어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기존에 쓰던 어법들은 구식이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1960년대의 사회분위기를 탐지하는 데는 그 당시 쓰인 소설만 한 것이 없다.

소설가 이청준 소개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써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이제 우리들의 잔을', '흰옷',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신화의 시대' 등이,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가면의 꿈', '자서전들 쓰십시다', '살아 있는 늪', '비화 밀교', '키 작은 자유인', '서편제', '꽃 지고 강물 흘러',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이 있다.

2008년 7월, 지병으로 타계하여 고향 장흥에 안장되었다.(책날개)

병신과 머저리 수록 작품 및 목차

수록 작품 : 퇴원, 아이 밴 남자, 줄광대, 무서운 토요일, 바닷가 사람들, 굴레, 병신과 머저리, 전근 발령, 별을 보여드립니다, 공범, 등산기, 행복원의 예수

해설 : 이카루스의 꿈 / 권오룡
자료 :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 / 이윤옥

병신과 머저리 첫 번째 수록 작품 

퇴원 줄거리

단편 소설 <퇴원>은 1965년 사상계 12월호에 발표된 이청준의 등단작이다. 

'나'는 공복 때마다 위에 쓰라린 통증을 느껴 친구 '준'이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장인 친구는 나를 위궤양으로 진단했고, 간호사 미스 윤은 아침저녁으로 나의 소변을 받아갔다.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통증은 말끔히 나았지만, 나는 그대로 병원에 머물러 있다.

어느 날, 병원장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 술을 권했고, 미스 윤도 한 잔을 같이 마셨다. 병원장은 나를 환자로 대하는 것 같지 않았고, 간호사 미스 윤도 어쩐지 그런 눈치다. 미스 윤은 이런 말까지도 했다.

"위궤양이 싫어시담 더 멋진 병명을 붙여드릴 수도 있을 거예요. 가령 자아 망실증 환자라든지······."(30쪽)

그리고 나는 '한국군 월남 파병 환송식'이 열린 다음 날 퇴원을 한다. 미스 윤은 퇴원하는 나에게 "다시 돌아오시겠죠?"라고 말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이제 제게로 연락해주세요."라는 미스 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병원 문을 걸어 나갔다.

퇴원 해설

부록에 실린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권오룡은 <퇴원>은 인물과 행위의 모호함이라는 주제, 그리고 형식 면에 있어서는 서사 구조의 중층성이라는 이청준적 특질을 단번에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평론가는 주인공이 처해 있는 '지금 여기'의 상황은 모든 것이 흐릿한 안갯속에 잠겨 있는, 다분히 카프카적인 부조리한 상황이라고 해설했다. 평론가들은 모호한 언어로 작품을 더 모호하게 해설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설 <퇴원> 자체가 모호한데, 해설을 읽으면 더 모호해진다. 이러니 정작 작품을 쓴 작가들이 평론가들을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병 없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는 요즘 말로는 '나이롱환자'에 해당한다. 간호사 미스 윤을 보면 유방을 만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나는 생활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인물로 그려져 있다. 

어렸을 때 나는 광에서 어머니와 누이들의 속옷을 깔아놓고 자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이틀 동안이나 광에 갇혔던 적이 있었고, '뱀잡이'로서 군대생활을 한 기억이 있다. 

이러한 과거 트라우마들은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경계에서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어쩌면 주인공인 '나' 스스로가 그 유혹을 영원히 떨쳐내기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퇴원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설해버리면 너무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이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이 쓰인 1960대와 지금은 뛰어넘을 수 없는 사회경제적인 골이 깊고 아득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주인공 '나'와 같은 사람은 어디선가 길을 헤매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표제작, 병신과 머저리

병신과 머저리 줄거리

나는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형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어느 날 헤어졌던 애인, 혜인에게서 청첩장을 건네받는다. 한편 의사였던 형은 수술로 어린 소녀가 죽자, 병원 문을 닫고 매일 술을 마시고 낮에는 방에만 틀어 박혀 소설을 쓴다.

'나'는 형이 쓰고 있는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말을 궁금해하며 소설을 매일 읽게 된다. 형이 쓰고 있는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형의 체험담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후퇴하는 과정에서 세 명이 적 후방 깊은 곳에 낙오되었는데, 김 일병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여야 살아돌아올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이야기였다.

형이 결말을 짓지 못하고 매일 술만 마시자, 참지 못한 '나'가 직접 소설을 결말짓는다. 형이 부상병을 죽이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걸로. 그러자 형은 며칠 뒤, 다른 버전의 결말을 써 두었다. 인간쓰레기였던 관모가 김일병을 죽였고, 그런 관모를 형이 쏴 죽였다는 결말이었다.

형은 어느날 술에 취해 혜연을 떠난 보낸 나를, 김일병을 쏴 죽은 걸로 소설의 결말을 지은 나에게 "병신 새끼, 머저리"라고 욕설을 하며 소설을 불태운다.

병신과 머저리 해설

병신과 머저리에 대한 해설 역시, 문학평론가 권오룡은 소설 병신과 머저리에서 형을 사로잡고 있었던 살해 욕망, 어쩌고 저쩌고로 풀어간다. 원작의 모호함을 평론가가 더 키우는 해석을 덧붙였다. 

아무튼, 병신과 머저리에서도 주인공인 '나'는 환부다운 환부가 없는 환자의 처지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주인공을 병신과 머저리라고 했던 형 또한, 소설 속에서 자신이 죽였다던 '관모'를 현실에서 만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의 소설이 현실에서 거부당하는 좌절감을 맛본다. 엄밀하게는 그의 욕망은 한낱 소설 속에서도 실현되지 못할 크기의 용기에 지나지 않았던 망상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궁극에 가서는 세계와 어떻게 자신을 화해시켜 나가느냐이다. 세계는 때로 너무나도 섬약한 영혼들을 거부하고, 불안한 영혼들은 끝내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배회하는 장소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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