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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과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

by 로그라인 2022. 7. 15.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에 못 미치는 고시원

엊그제 비가 많이 오던 날 밤, 딸이 전화를 했었다.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서울 간 후, 첫 전화였다. 연수 프로그램에 적응하느라 정신없겠다 싶어 톡으로만 소식을 듣곤 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이 맞았다. 딸이 감기가 들었는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방학 끝나면, 짝꿍은 사촌 언니네에 들어간다네요. 저는 고시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연수 프로그램에 짝꿍도 합격하여 같이 간다고 했을 때, 마음이 놓였었다. 연수 프로그램에서는 방학 때만 기숙사를 제공하고 방학 후에는 자비로 숙소를 마련해야 하는데, 딸 혼자 방을 구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짝꿍이 사촌 언니네 간다는 말부터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딸의 입에서 '고시원'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아 - 뭐랄까, 고시원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이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양 백리 밖에는 절대 거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었을까.

서울에 아는 친척 하나 없는 상황이, 딸이 스스로 고시원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데서, 자식 교육을 제대로 뒤받침 하지 못하는 못난 아빠라는 자괴감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고시원의 유래와 장단점

고시원 하면 뭔가 비좁고 어두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고시원은 과거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주로 살면서 고시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로스쿨이 생기면서 사법시험은 폐지되었고, 최근 고시생들은 대개 원룸에서 공부한다.

현재 고시원은 당초 주거 학습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대학생은 물론이고,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비교적 단기간 이용하는 주거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시원은 보증금이 필요 없고 관리비나, 전기료, 수도세 등 별도의 공과금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월세 보증금이 부담스러운 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고시원은 명칭도 고시텔, 원룸텔, 레지던스 등으로 불리며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고시원은 여전히 협소하고 방음 문제도 있다. 또, 공용공간을 쓰다 보니 프라이버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제일 큰 단점은 최소 주거면적 이하에 살다 보니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거다.

이름이야 어떻게 불리든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7의 2호에서 규정하는 고시원업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시설은 모두 고시원에 해당한다. 

고시원업 :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

1인당 최소 주거면적, 최소 주거기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는 필요한 최소 주거면적이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1인 가구의 최소한의 면적을 14㎡로 규정해놨다. 2인 가구는 26㎡, 자녀 1명 있는 부부는 36㎡이다. 고시원은 7㎡이하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일본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이 25㎡이고, 대부분 선진국들도 25㎡ 이상이다. 

2018년, 우리나라 고시원을 둘러본 유엔(UN)의 적정 주거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일라니 파르하는 고시원이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상당한 기간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노숙자(homeless)'에 해당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울시는 신축하거나 증축하는 고시원은 최소 공간 7㎡를 확보하고 창문을 의무 설치해야 한다는 건축 조례를 올해 1월에서야 개정했다. 법상 14㎡은 못 지켜도, 최소한 7㎡이라도 확보해라는 거다. 서울시 조례만을 보면, 삶의 질이 절반으로 후퇴하는 셈이다.

흔한 고시원 풍경

고시원 풍경
고시원 구조

딸이 선택한 고시원 

그리고 오늘, 예약금을 주고 8월 1일 입주하기로 했다고 딸이 톡을 보냈다. 월 입실료 30만 원, 40만 원, 60만 원짜리 고시원이 있었는데, 40만 원짜리 고시원을 택했다고. 만 스무 살이 되자마자 딸애 명의 통장을 하나 만들어 비과세 증여한도인 5천만 원을 넣어 주었는데, 거기서 지출해도 되냐고 물었다. 아직 한 번도 지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딸은 대학 기숙사까지는 50분이 걸렸는데, 고시원은 버스 두 정거장이라고 말했다. 방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좁고 살만할 거 같다."고만했다. 그간 딸애의 방이 작아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고시원은 자기 방의 반만 하다고 했다. 아무튼, 딸은 팔월부터 고시원에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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