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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장르소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냉동인간의 꿈

by 로그라인 2023. 4. 27.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독후감

정지혜 작가의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몽실북스, 2022)는 냉동인간을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출판사는 로맨스와 SF,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SF라고 하기에도 SF적인 데를 찾아볼 수 없어  민망한 데가 있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는 난잡하다고 할 정도로 플롯이 복잡하다. 25개 꼭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매 꼭지마다 거의 새로운 인물이 연결괴리 없이 등장한다. 꼭지마다 50년 전, 30년 전, 17년 전 시점도 뒤죽박죽 섞여있어 대단한 끈기가 있어야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아래 줄거리는 개요를 파악하기 쉽게 시점이 아니라 등장인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라 소설의 시점 흐름과는 다르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시점들은 독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주제도 냉동인간, 데이트폭력, 세대갈등, 존속 살해, 페미니즘 등 어설프게 넘 많다.

그렇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건조한 다큐로 다가오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제대로 구축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소설의 소재처럼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의 등장인물들은 피와 살이 섞인 인간이기보다 냉동인간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참고로 냉동인간이라는 용어는 언론매체의 오도에서 비롯됐다. 지금 현재 전 세계 냉동인간은 월트 디즈니를 비롯해 약 6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모두 사후에 냉동인간이 되었다.

즉, 지금은 소설처럼 살아 있을 때 냉동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선고를 받아야 냉동인간이 될 수 있다. 하여 냉동인간이라기보다 냉동사체 혹은 그냥 냉동 보관쯤으로 불러야 그들의 상태에 부합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사체를 냉동 보관하는 데에는 약 1억 원에서 3억 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작가 정지혜 소개

1985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장편소설 <헤어살롱 그 남자애>로 데뷔했다. SF 단편 소설집 <14일의 여인>에 <웨딩마치>로 참여했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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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줄거리

규선은 대형 냉동인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오늘은 50년 전에 냉동된 기한을 해동하는 날이다. 기한이 꿈에서 만난 여자를 만나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었다는 기록을 보고 기한을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규선은 냉동인간들은 부도덕하다며 혐오의 시선을 던지곤 한다.

기한은 50년 전 같은 대학 동기 윤정을 꼬드겨 잠자리를 한 후 윤정의 나체 사진을 찍어 선후배와 돌려보기까지 했다. 윤정이 임신을 했다는 소리를 듣자 바로 그녀를 버렸다. 기한의 엄마는 그를 냉동인간으로 선뜻 보냈고 아이를 안고 찾아온 윤정을 매몰하게 내쳤다.

그래도 기한의 누나 기연이 윤정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윤정의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는데, 원장이 아이 이름을 차선으로 지어주었다. 차선은 50년이 되면 깨어날 아버지(기한)를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냉동인간 회사 근처에서 빈티지 옷가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윤정은 기한과 헤어진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 박지환을 낳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나면 손자를 해동시켜야 한다는 무속인의 말대로 몰래 손자를 바로 냉동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가 사라지자 윤정은 시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하였다.

냉동인간 회사가 장기밀매를 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던 은태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곧 장기이식을 하게 될 운명에 처한 박지환을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가은은 규선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23세에 냉동되었다가 30년 만에 해동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가은은 40년 전에 진광이라는 남자에게 데이트 폭력을 심하게 당했고, 폭력남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가은을 냉동인간이 되게 한다. 규선은 가은과 8년째 연애 중이지만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이날까지 솔직하지 못했다는 게 가은을 내내 괴롭혔다. 이유가 있었다. 규선이 냉동되는 사람들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몇 번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서서히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때마다 규선은 너무도 단호했다.(83쪽)

진광은 가은을 숨긴 것에 분노하여 가은의 부모님 빌라(402호)를 찾아가 그들을 살해하고 순순히  잡혀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이제는 차선의 빈티지 옷가게의 단골이 되어 들락거린다. 차선은 진광을 맘에 들어하며 그와의 연분을 꿈꾼다.

어느 날 차선을 빌라에 바래다주고 돌아 나오던 진광은 귀가하던 가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지만, 오십 대의 얼굴이 아닌 이십 대의 얼굴을 보고 긴가민가한다. 차선은 빌라 402호에 살고 있고, 가은은 같은 빌라 201호에 살고 있다.

가은이 부모님이 살해된 빌라에서 다시 살게 된 것은 부모님과 같은 빌라에 살았던 주원 아주머니가 그녀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집을 싸게 임대해 준 덕분이었다. 주원의 딸 나경의 회사 직속 상사가 바로 규선인데, 나중에 나경이 규선이에게 가은이 냉동인간이었음을 얼떨결에 알려주게 된다.

(주원도 사십 대 후반에 냉동되어 17년 후에 깨어났다. 그녀는 사십 대 후반에 쌍둥이를 낳자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아이들이 만 17세가 되었을 때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냉동 인간이 되었다. 설득력이 아주 떨어지는 냉동인간 사유다)

한편, 기한은 꿈에서 만난 여자를 만나기 위해 꿈에서 입었던 옷과 같은 옷을 차선의 옷가게에서 발견하고 그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광장으로 향한다. 그 옷은 진광이 40년 전에 가은으로부터 선물 받은 옷이었고, 진광이 차선의 옷가게 내어놓았던 것이다. 기한과 차선은 옷을 사고팔았지만 부녀관계임을 서로 몰라본다.

광장에서 우연히 가은을 발견한 기한은 꽃다발을 들고 가은에게 다가가지만 가은은 순간 눈물을 글썽이며 얼어붙는다. 기한은 자기를 사랑해서 그녀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날 이후 기한은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가 누구인지 찾아 나선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결말

이제 할머니가 된 기한의 누나 기연은 아들이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자 동생 기한에게 수술비를 구걸해 온다. 기연의 엄마가 모든 재산을 동생 기한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수술비를 받은 대가로 기연의 손자 민재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남자를 차로 치어 죽인다.

기한은 규선의 집에서 가은에게 준 꽃다발을 우연히 발견하고 꿈속의 여자가 가은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은은 빌라를 서성이는 진광이가 두려워 규선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바로 빌라로 와 달라고 애원한다. 급히 택시를 잡기 위해 신호등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규선은 돌진하여 오는 차동차에 치여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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