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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외국소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줄거리와 결말, 소설 같은 연애 이야기

by 로그라인 2023. 6. 19.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작년 가을,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랬다. 내 기억 속에 그녀는 성적으로 굉장히 대담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편견은 내가 아니 에르노가 쓴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자전적인 소설 <단순한 열정>(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01)과 일기를 엮은 <집착>(조용희 옮김, 문학동네, 2004), 단 두 편만 읽은 결과였다.

단순한 열정은 48세였던 작가가 35세였던 파리 주재 소련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과의 불륜을 그린 연애 이야기이고, <집착>은 그 시기에 그녀가 썼던 일기를 그대로 출판한 책이었다. 아래 책표지는 옛날 책표지에서 디자인을 많이 했다.

책표지책표지
단순한 열정과 탐닉 책표지

당시 두 아들이 있는 이혼녀였던 아니 에르노는 작가이자 교수였고, 외교관 S는 유부남이었다. <단순한 열정> 줄거리에는 프랑스 작가들의 소련 여행을 수행했던 그와 레닌그라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불륜을 이어가고 그가 소련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녀의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연애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소설 단순한 열정의 분량은 단 74페이지에 불과하다. 그 짧은 분량에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몸을 관통했던 정욕의 실체를 어떠한 문학적인 미학이나 형이상학적인 은유 없이 사실 그대로만 기록했다. 그것은 놀라운 자기 관찰이었고 자전적 글쓰기의 새 지평이었다. 

은밀한 성적 사생활이 날 것 그대로 담긴 단순한 열정은 출판되자마자 프랑스에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당시 나 또한 적잖은 당혹감과 혼란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문학의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고, 과연 어디까지 쓸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기록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열정이 가지는 파괴력이 여기에 있다. 단순한 열정은 허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기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형식의 소설일 수도 있다.

작가는 억압과 차별, 부끄러움에 맞서는 용기로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썼다. 그녀의 작품에는 대학 시절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 천박한 부모, 가부장적 남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단순한 열정과 집착은 그중에서도 자신의 몸을 통과해간 정염을 그녀만의 문장으로 기록해 나간 소설이다.

단순한 열정 줄거리

'올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소설 단순한 열정의 첫 문장이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성적인 사생활을 기록하는 첫 문장으로 이 문장을 썼다. 작가는 이어서 자신이 본 그 영화를 묘사하고는 이 작품을 쓰는 자신에게, 또 단순한 열정을 읽는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아마도 이번 글쓰기에서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아니 에르노는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그 남자는 이브 생 로랑 정장과 세루티 넥타이, 그리고 대형 승용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속물이었고, 출세 지향적인 소련 공산당의 충복이었다. 프랑스 여성 작가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누가 그를 보고 알랭 들롱을 닮았다고 하면 굉장히 좋아하는 미성숙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아니 에르노는 그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화장을 할 때에도, 머리 손질을 할 때에도, 매니큐어를 바를 때에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오직 그만을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원고를 고친다거나 책을 읽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할 정도로 오직 그 만을 생각하는 나날.

그 남자의 욕정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기 위해 프로노를 보고, <육체적 사랑의 기교>와 같은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그 사람에게는 언제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희망으로 새 옷이나 귀고리, 스타킹을 거울 앞에서 하나하나 몸에 맞춰본다. 여성 잡지에서 운세란을 찾아 읽으며 오늘은 그가 연락을 해 올까 마음 졸이며 기다린다.

아니 에르노는 그와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며 자신이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애인의 아내를 질투하면서도 그와 그의 아내, 셋이서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기도 하고, 그와 정사 후 그 사람의 몸이나 옷에 자신의 흔적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그녀는 자신과 정사를 나누며 보낸 오후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고, 그 이유를 찾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제약들이 아니 에르노의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 된다. 그러한 상태에서 작가는 단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한다.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었으므로. 

단순한 열정 결말

아니 에르노는 그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그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을 생각하고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와의 만남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날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조자 알 수 없었다. 온몸이 아파왔다.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고통은 도처에 있었다."(49쪽)

그가 떠난 이후 아니 에르노는 하루하루를 시간을 헤아리며 지내게 된다. '그 사람이 떠난 지 이 주일째야, 이제 다섯 주가 지났구나, 작년 오늘은 내가 거기 있었지, 나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어'

아니 에르노는 주말이면 일부러 집안 청소나 정원 손질 같은 고된 육체 일에 매달렸다. 그가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후부터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이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예전처럼 그녀의 일상을 집요하게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한 세세한 기억들이 문득 되살아나는 일이 있다. 

그즈음 그가 떠난 이후 처음 전화를 걸어왔고, 그녀는 예전처럼 그가 본 적 없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그를 기다리다 하룻밤 정사를 하고 그의 호텔까지 차로 태워다 준다. 그녀는 낭테르에서 퐁드뇌유까지 가는 동안 빨간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뜨겁게 그를 껴안고 애무했다. 그남자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 사람은 사흘 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작가는 그날 저녁 홀연히 왔다 간 그 남자는 예전에 그가 여기 있을 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 자신의 글 속의 그 사람이 아님을,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아니 에르노 프로필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 소도시 릴본에서 출생, 이브토에서 가난한 소상공인 부모 아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루앙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후 교사가 되었다.

필립 에르노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 다비드와 에릭을 두었다. 남편과는 1980년대 초 이혼했다.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일했고, 이후 프랑스의 국립 원격 교육 센터(CNED)에서 23년 동안 일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옷장)>으로 등단했다. 1984년 <남자의 자리>로 르노드상을 수상,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상'이 제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소설과 미발표 일기들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다.

작품으로는 <부끄러움>, <한 여자>, <사건>, <단순한 열정>(1991), 일기 모음집인 <탐닉>(2001), <집착>(2001), <사진 사용법>,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 , <얼어붙은 여자>, <카사노바 호텔>(2020) 등이 있다.

<사건>은 <레벤느망>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단순한 열정>은 2000년 영화화되어 제73회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우라나라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202년 2월 1일 개봉됐다.

아니 에르노는 2022년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구속을 밝혀내는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으로 프랑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거주한 파리 교외의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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