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소설 먼바다, 페미니즘과 첫사랑
첫사랑은 처음이라 어렵다. 아직 영글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시기에 벼락처럼 찾아오니 더욱 그렇다. 운 좋은(?) 사람들은 첫사랑과 결혼하기도 하지만 첫사랑은 애잔함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공지영의 소설 <먼바다>(해냄출판사, 2020)는 첫사랑을 먼바다 같은 이미지로 그리고 있는 장편 소설이다.
사실, 이 소설을 손에 잡은 지는 며칠 됐다. 대부분의 연애소설들은 빨리 읽힌다. 그런데 공지영의 먼바다는 조금 읽기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첫사랑의 아련함 때문이었을까?
소설가 공지영 프로필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했다. 중학교 때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이혼을 세 번 했고, 각각의 결혼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2020년부터 하동, 섬진강변에서 살고 있다.
장편소설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 <먼바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괜찮다, 다 괜찮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2> 등이 있다.
작가의 말에서 "추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먼바다의 주인공 이미호 교수도 1963년생으로 추정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삶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된다.
공지영 소설 먼바다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 이미호는 독문과 교수다. 1978년, 여고 1학년이던 미호는 성당에서 신학생 요셉에게 첫눈에 반했다. 1981년, 미호는 대학에 입학했고 요셉은 그날 이후로 연락을 끊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세월은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미호의 아버지는 1980년,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서 살아라는 아버지의 유지대로 미호는 독일에서 힘든 유학생활을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었다.
헤밍웨이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교수들과 마이애미행에 오른 미호는 1년 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발견한 첫사랑 요셉을 뉴욕에서 만나 보기로 갈등 끝에 결심한다.
40년 전, 첫사랑 요셉이 왜 그런 말을 해 놓고는, 또 그렇게 사라져 버렸는지를 미호는 알고 싶었다. 자신과 연락을 끊고는 곧바로 다른 여자와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는지도 따져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른 여자와 결혼할 거면서 왜 나랑 사귀었나요?
공지영의 먼바다는 요셉이 왜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져 버렸는지, 도대체 그날 미호와 요셉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하는 궁금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연애소설이다. 이후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실 것.
소설 중후반부에서야 밝혀지는 그날에 일어난 사건은 이렇다. 요셉은 "신학교를 그만 두기로 했다, 일단 해병대에 가서 제대를 한 다음에 일반 대학에 편입을 하려고 한다, 3년을 기다려준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니?"라고 미호에게 물었다.
미래를 약속하자는 요셉의 말에 여고생 미호는 매우 놀라서 "미안해요. 저 집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울먹거리며 뛰쳐나와버렸다는 것이다. 미호의 거절로 실의에 빠진 요셉은 방황하다 곧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전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라는 궁금증으로 <먼바다>를 읽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는 실망감이 컸다. 요셉을 그토록 사랑한 미호였는데, 그의 신앙을 지켜주고 싶었다지만, 나이도 이제 겨우 19살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신실한 요셉이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는데 도망치는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싶어서이다. 열아홉은 사랑하기에 결코 작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미호는 요셉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첫사랑을 했던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 놓고 40년이 지나서 그때 왜 갑자기 연락을 끊었는지, 왜 곧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는지를 궁금해해야 하는 건가요? 소설의 전제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출판사는 소설 <먼바다>를 "속도감 있는 문체(···) 감성적인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단순히 첫사랑이란 일상적인 소재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일, 사랑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나는 공지영의 소설 <먼바다>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빨리 읽히는 문장이 아니어서 이야기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적어도 내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작가님 미안 -)
아무튼 미호는 첫사랑 요셉을 40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고 돌아온 비바람 치는 밤, 자신이 행복했었던가, 불행했었던가를 생각해 본다. 그저 모든 것이 마치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치 예기치 않은 만남과 헤어짐이 그렇듯 그저 운명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재해로 40년 동안 잃어버렸던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춘 요셉도 그날 밤, 다시 그녀를 찾아와 그녀의 품에 안긴다. 첫사랑의 완성인가? 맥 빠지는 첫사랑의 결말이다.
소설 먼바다의 에피소드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다소 뜬금없이 진행된다. 헤밍웨이 심포지엄에 간 교수들은 다들 모여서 첫사랑 이야기를 내내 한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다.
그중에서 압권은 국문과 황 교수의 첫사랑 에피소드이다. 1980년대 초반, 황 교수는 그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노브라도 다녔던, 남자 친구도 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는 황 교수와 몇 달간 헤어져 있기라도 하면 방탕한 데이트를 즐겼다. 그래도 황 교수는 그녀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집안 반대에 부딪쳐 결혼을 포기했다.
얼마 후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시 곧 얼마 후 그녀가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반대하던 그의 부모님이 그제야 그를 불러 "애야, 그 애를 데리고 오너라, 이렇게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제 그 애를 우리가 거둬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무리 양념 에피소드라고 하지만. ㅋ
페미니즘에 천착한 소설의 공통점
공지영의 소설 <먼바다>에는 주요 등장인물이 이혼녀 아니면, 미혼모만 나온다. 주인공 이미호 교수는 미혼모이고, 그의 딸 아름이도 곧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가 된다. 미호의 여동생과 요셉의 여동생은 이혼녀이다.
페미니즘에 천착한 작품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남자는 나쁜 놈이고 세상의 모든 여자는 젠더 불의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로 일반화하는 단점이 있다.
가부장제를 격파하고 페미니즘을 확산하려는 작가의 오랜 열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등장인물 전체를 그렇게 설정할 필요가 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플롯이 너무 작위적인 매너리즘에 빠져 이야기가 입체성을 잃고 그만 납작해지기 때문이다.
<먼바다>에서 남자 주인공 요셉은 마지막에 회개(?)하여 40년 만에 그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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