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 이레, 2004)는 남자라면 첫사랑이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 보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는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짧은 순간들과 성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들을 집요하게 파고든 걸작이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대담하고도 원숙한 메서드 연기로 200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영화 리뷰를 올린다면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에로틱하면서도 철학적인, 그래서 그 감동이 오래도록 남았던 걸작으로 기억됩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에는 악의 평범성이니 하는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하는 평들이 대다수였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이 소설은 그러한 역사적인 관점보다 열병에 걸린 열다섯 살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로 애잔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래서 가끔 이 영화를 보고 소설도 읽어보곤 합니다. 영화와 소설의 줄거리는 큰 차이가 없으나 영화화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 영화보다 소설이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더 깊게 묘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더 리더 줄거리
소설은 1950년대 독일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여섯 살 한나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허약한 사춘기 소년 미하엘 베르크는 비가 쏟아지는 귀갓길에 구토를 하고 그것을 우연히 본 한나가 소년을 도와주면서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매일 만나 책을 읽고, 샤워를 한 뒤 사랑을 하고 한참 동안 나란히 누워 있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미하엘은 한나의 농염한 육체와 손길에 익숙해졌지만, 소년은 정작 한나의 가족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이 소설의 강렬하고 도발적인 문장들은 한나의 불안감과 비밀을 암시하면서 미하엘의 눈앞에서 한나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미하엘은 갑자기 떠나버린 한나를 생각하며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이 과연 진실한 사랑이었던지 회의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누구나 미하엘처럼 혼란에 빠지겠지요.
제2부에서 미하엘은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미하엘 베르크는 세미나로 간 법정에서 한나를 다시 만납니다. 마치, 운명처럼.
미하엘이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한나의 숨겨진 과거가 법정 심리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밝혀집니다.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으며, 자신의 문맹을 숨기기 위해 지멘스 회사에서 승진도 마다하고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문맹에 대한 한나의 수치심은 미하엘과 사귀던 시절에 다니던 전차회사에서 정식직원이 되려는 순간,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회사와 미하엘로부터 그녀를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숨기기 위해,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하였다고 시인하여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제3부에서는 미하엘 베르크가 수감된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주는 기나긴 세월이 묘사됩니다. 한나가 수감된 지 8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된 책 읽기 녹음은 그녀가 사면될 때까지 10년간 계속됩니다.
그러나 미하엘은 녹음테이프에 문학작품을 읽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사적인 메시지는 넣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석방 당일 새벽에 교도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에필로그
한나의 비극적 선택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하여, 인간의 허약한 자존심에 대하여, 나치시대의 과거로부터 도망치려는 연약한 존재에 대하여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우아한 문장으로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를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단계까지 승화시켰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나의 알 수 없는 눈망울과 미하엘의 애처로운 시선이 심장을 깊게 파고드는 듯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집니다.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생명력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모양입니다. 영화에 대한 리뷰는 아래 링크 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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