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 독서 감상문
나는 산골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책 몇 권 없는 학급 문고에서 <제인 에어>를 읽고 그만 샬럿 브론테의 펜이 되었다. 깊어진 펜심은 그녀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로 나아갔고, <폭풍의 언덕>은 사춘기 시절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바네사 졸탄이 쓴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은 그간 나의 책 읽기가 얼마나 얕은 것이었던가를 실감케 했다. 나와 방향성은 많이 달랐지만 그녀의 삶의 방식과 책 읽기 방식에 많은 공감이 갔다.
바네사 졸탄은 화장실을 가든 지하철을 타든, 카페를 가든 1년 동안 언제 어디서나 제인 에어와 함께 했다. 네 명의 북클럽 회원과 매주 만나 각자가 뽑아 온 제인 에어의 문장을 음미하며 토론했다.
샬럿 브론테가 걸었을 길을 산책하며 대기를 마시는 순례 도보여행을 했다. 그야말로 제인 에어와 함께 1년을 대화하며 산 셈이다. 이 얼마나 경탄할만한 깊은 책 읽기인가.
작가 바네사 졸탄 소개
바네사 졸탄(Vanessa Zoltan)은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영문학(BA)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비영리 경영학(MS) 석사, 그리고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을 공부했다.
현재 낫 소리 프로덕션 Not Sorry Productions의 창립자이자 CEO로, 팟캐스트 ‘해리포터와 신성한 텍스트’, ‘트와일라잇 인 쿼런틴’, ‘리얼 퀘스천’ 등을 제작 및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신성한 읽기와 쓰기를 탐험하는 순례 도보 여행을 인도한다.
<신성한 제어 에어 북클럽>을 쓴 작가 바네사 졸탄은 자신의 정체성을 경건한 유대인 무신론자로 정의한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그곳에서 좋은 인간이 되고, 성취에 대한 보수를 받기를 바라며 펜실베이니아 비영리 석사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석사과정이 끝나갈 무렵 비영리 기관이라는 것이 부자들의 깨끗한 양심을 구매하고 선반 장식용 홍보 사진을 찍고 세금 우대를 받도록 돈세탁 전략을 제공하는 곳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네서 졸탄은 약혼자도, 좋은 일자리도, 힘들게 얻은 뉴욕의 매력적인 아파트도 모두 뒤로한 채, 서른 번째 생일 바로 다음 달에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살아왔던 삶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원, 즉 근본적으로 좋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하버드 신학대학원 입학에 대해 아빠는 "변덕스럽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고, 엄마는 "나도 이해해 보고 싶은데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설명을 좀 해 줄 수 있겠니?"라고 애원하며 필사적으로 다른 박사학위 과정 링크를 보냈다.
그렇게 입학한 하버드 신학대학원이었지만 바네사 졸탄은 자신이 신과 그에 관한 언어, 성경, 교회 같은 것들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체험한다. 그 누구보다 고통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신성함으로 살고자 했던 한 인간에게는 그것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조부모가 나치 치하 홀로코스트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들은 그녀의 부모에게로 전해졌고, 그리고 부모에게서 작가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작가는 학창 시절 내내 우울증을 앓으며 정신과 처방도 받았다.
작가가 보기에 이 세상은 하느님의 세상이 아니라, 백인 남성의 세상이었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위해 유색 인종들에게 고통을, 죄 없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억압과 고통을 허용한 하느님을 어떻게 찬양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는 건 너무 비겁하고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의 깊이 읽기
그래서 작가는 성경은 내다 버리고, 고딕 로맨스 소설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작가의 엄마가 열네 살 생일 선물로 받았던 소설, 작가도 사랑했던 소설 <제인 에어>에서부터 신성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작가에게 <제인 에어>는 어두운 밤 우리를 둘러싸는 공허를 채울 어떤 것, 공포의 시간에 붙잡을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버네사 졸탄이 제인 에어가 신성한 영감을 받아 기록된 텍스트로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자가가 제안하는 책 읽기 방식은 이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골라 노트하고 그 의미를 아주 깊게 되새겨 보는 것이다.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에서 작가가 책 읽는 방식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내 자존심과 상황이 요구한다면,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있어. 행복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팔 필요는 없어. 나의 내면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보물이 있고, 모든 부수적인 즐거움이 사라지더라도 그 보물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거야."
-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중에서
작가 바네사 졸탄은 놀랍게도 이 짧은 문장에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들을 채굴해 낸다.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있어." 이 짧은 대사는 자신이 지닌 힘과 취약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문장이라는 거다. 우리는 누구나 광활하고 끝없는 세상 속에서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사실을 이 문장은 일깨워 준다.
하지만 누구도 혼자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단 하나의 재앙만으로도 홀로 살아야 할 위험에 내던져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 외로움을 딛고 생존할 수 있다 해도 그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있어."라는 말은, 우리가 교감을 나누기 위해 살아가는 사실을, 바로 그것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읽고 만나고 열망하는 이유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있지만,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득불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존심과 상황이 요구한다면, 혼자 살 수도 있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천명이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네사 졸탄은 내 자존심과 상황이 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행복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팔아야 하는 상황은 어떤 것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내면의 보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수적인 즐거움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인 에어가 처했던 섬세한 감정들을 캐어낸다.
이러니 작가의 깊은 책 읽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에는 작가가 나름대로 채굴한 작은 보물들이 수없이 반짝인다.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의 의미를 다르게 발견하는 방법들을 분명 발견할 수 있으리라.
신성함 VS 통속적
작가가 권하는 방식대로 깊이 읽기 위해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에 닷새 정도 푹 빠져 읽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이다. 작가는 신성함이라는 개념을 사랑하지만, 나는 그저 '통속적'이라는 개념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경건하지도 않고 신성함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는 버네사 졸탄과 같은 끈기와 집요함이 없다. 나는 좀 '다다익선'적인 경향이 있다. 내 고질병이다. 유한한 세상에 어떤 한 곳에만 집중하는 건 좀 억울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대체로 진실하지 못한 편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지만, 작가처럼 깊이 읽겠다는 용기도 경건함도 없다.
"깊이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빼어난 에세이" ı ★★★
하지만 내 사춘기를 사로잡았던 소설들을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이 다시 읽어 보라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외숙모에게 학대받으며 불운한 유년기를 보낸 제인 에어가 성인이 되어서 로체스터를 왜 용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 통속적 의미를 새삼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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