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그녀의 심청>은 심청이와 장 승상 부인의 연대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고전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만화이다. 작가는 seri와 비완이다. seri는 부산외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일하다 웹툰 작가가 되었다. 비완은 한국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미술대학을 나와 현직 미술 교사이자 웹툰 작가이다.
고전 소설 <심청전>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뭔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seri와 비완의 <그녀의 심청>은 원전의 도발적인 비틀기를 통해 어느 정도는 그 불편함을 해소해 준다.
심청전의 주제
우리가 아는 심청전의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효심이 지극했던 심청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꽃다운 열여섯 나이에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졌고, 용왕은 그런 심청을 어여삐 여겨 심청이 황제의 부인이 되게 하고 심봉사의 눈도 뜨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청전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쁘게 이야기하면 효도를 위해서라면 자식이 몸이라도 팔아야 된다는 것일 테고, 좋게 말하면 효심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정도.
그러나 웹툰 <그녀의 심청>의 작가들은 "장승상 댁 부인이 왜 심청이를 이뻐하고 공양미 삼백석까지 대신 내준다고 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원전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완전히 재해석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2018년)을 수상한 <그녀의 심청>은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 연재(2017~2020)되었다. 중국어, 일본,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연재되었다. 단행본은 외전과 함께 7권이 완간(2018~2020) 되었다. 여기서는 단행본 1권에서 3권까지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한다.
그녀의 심청 줄거리
<그녀의 심청> 1권은 우리가 알던 효녀 심청이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된다. 거리의 비렁뱅이로 흙탕물 같은 현실을 견디어내면서 살아가던 심청이는 효녀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낀다.
심봉사는 딸아이에게만 생계를 의지하는 무능력하고 파렴치한 가장으로, 점쟁이로 등장하는 뺑덕어미는 심청의 수호천사로 등장한다. 심청은 장승상 댁 마님이 시집오던 날 그녀를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와 연을 맺으며 보이쉬한 매력을 뽐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단행본 2권은 장승상댁 마님이 심청과 연대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 뺑덕 어미와 스님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점차 복잡해진다.
뺑덕 어미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 폭을 서서히 넓혀가고, 몽은사 중은 봉건적 꼰대의 냄새를 풍기며 극의 긴장을 더해간다. 심청은 뺑덕어미와 장승상 댁 마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몽은사 중과도 내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서서히 자각해 간다.
3권에서는 장승상 댁 마님과 심청의 미묘한 관계가 백합처럼 깊어지고, 뺑덕어미는 그들 사이에 노골적으로 끼어들어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역설한다.
몽은사 중은 중대로 심청에게 여성혐오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순종과 굴욕을 강요한다. 작중 인물의 갈등이 섬세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3권은 막을 내린다.
총 82화에서 완결된 <그녀의 심청>은 35화까지 단행본 3권에 담았다.
심청전의 각색이 많은 이유
2권 작가 후기에서 작가들은 심청전의 배경은 대개 조선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판본에 따라 송나라, 명나라인 경우도 있고, 가상의 나라도 있는데, 유리국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작가 후기야 어떠하든 '그녀의 심청'은 고전의 도발적인 비틀기 시도는 우리의 고전을 풍부하게 하는 작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심청>은 여성 간의 동성애 또는 연애 감정에 가까운 강한 우정을 다룬 백합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고전에서 심청은 아버지가 눈만 뜰 수 있다면 망망대해에 목숨을 던지는 용기를 가진 효녀로 그려진다. 반면 심봉사는 생활 능력이 전혀 없는 비렁뱅이면서도 오직 자신이 눈을 뜰 수 있다는 욕심에 공양미 삼백석을 빚지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인다.
공양미 삼백석은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대충 10억으로 추산하는 이도 있을 만큼 거액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자신의 눈수술을 위해 빚을 졌다는 셈이다. 심지어 심봉사는 빚을 질내야 질 수도 없는 무능력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소설가 최인훈은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 심청을 청나라에 몸 파는 여자로 팔려갔다가 이후 왜구들의 노리개로 살다 눈먼 노파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자로 각색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소설 <심청>에서 노인의 양기를 위해 잠자리를 같이 하는 여자아이로 그렸다.
정우성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마담 뺑덕>(2014)은 아예 뺑덕 어미가 심학규를 철저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각색했다. 줄거리가 좀 생뚱맞긴 한데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기 바란다. 이외에도 웹툰 등 심청전을 각색한 작품들은 많다.
고전 소설 <심청전>이 이렇게 각색이 많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심청전은 연대와 작자가 미상인 고전 소설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내려오는 효도가 목숨보다는 가치 있다는 강박이 빚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후대인들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도 비틀어보고 저렇게도 비틀어보면서 그 강박을 해체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녀의 심청>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페미니즘을 덧칠한 꽤 수준 높은 작품으로 읽힌다. 표지에서 보듯 그림체도 화려하고 완성도가 높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알던 심청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 고전 소설의 입체적인 접근을 위한 경로로 이 작품을 추천한다.
심청전과 한강의 채식주의자
일주일 전, 한가로이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가족 단톡방에 아들이 "한강 노벨문학상, 미쳤다."라는 톡을 넣었다. 연이어 딸과 아내가 믿을 수 없다는 톡을 하며 각자 부산을 떨었다.
이 블로그의 마지막 글이 두 달 전에 올린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리뷰였던지라 갑자기 이 블로그가 생각났다. 그간 블로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나마 다시 글을 써 본다.
작가 한강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인하여 축하받을 자리를 만들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작가는 스웨덴의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의 글들이 오랜 시간을 묵혀 나왔던 것처럼 그녀의 행동도 진중하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은 청소년의 성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금서로 지정했었고, 현역 작가 가운데 어떤 이는 한강의 작품을 역사 왜곡 소설이라고 폄하하는 일도 버젓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회 토양에서 자란 한국인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간 대부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육칠십 대인 걸 감안하면, 그것도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작가란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그렇듯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한강의 작품들을 읽고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들은 언제나 사회적인 강박을 걷어내고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아픔과 상처를 선연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머나먼 이국, 폴란드에서 춘향전에 대한 서평을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한국어판에서 할리나 오가렉 최 옮김, 1970)에 남겼다.
심청이 자라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옛날에는 심청이나 춘향이가, 그리고 현대에는 영혜 같이 고통받으며 삶을 견뎌내야 하는 여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있다. <그녀의 심청>은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인 강박을 걷어내는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품
-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 줄거리, 나무 불꽃과 몽고반점 해석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 단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 양철북 줄거리와 해설, 귄터 그라스 노벨문학상 수상작
- 백년 동안의 고독 줄거리와 해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사실적 리얼리즘 환상 특급
- 아니 에르노의 탐닉, 처연한 사랑에 대한 각주
- 검은 노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생애와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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