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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가 말하는 빨치산 아빠와 나

by 로그라인 2023. 6. 3.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도사

작가의 말에서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통렬한 반성이다.'라고 썼지만, 나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를 엄혹한 삶을 살아야했던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도사로 읽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묘한 감정에 자꾸 빠졌다. 에구, 빨치산으로 아버지는 그렇다 치지만 그 딸은 지가 선택한 삶도 아니었는데, 그녀가 산 한평생도 오죽했을까, 무릎을 치면서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킥킥거리게 되고 그러다 또 눈물이 핑 도는 그런 소설이었다.

작가가 아버지를 보내면서 아버지가 품었던 한을, 또 자신이 품었을 한들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유머라도 섞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독자들을 한정없이 슬픔으로만 몰고 들어가 독자도, 작가도 그만 우울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정지아 작가는 탁월감 유머감각으로 굴곡진 아버지의 일생을 소환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만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애도함으로써 아버지를 이 생에서 해방시켰다. 아마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바치는 애도와 해방에 동참하신 독자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작가 정지아 프로필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고향인 구례에서 지내면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전 3권)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고, 소설집 '행복'(2004)과 '봄빛'(2008)을 출간했다. 단편소설 '풍경'으로 2006년 이효석문학상을, 소설집 '봄빛'으로 2008년 올해의 소설상과 2009년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빨치산의 딸>은 남로당 소속으로 1947년부터 빨치산으로 활동한 아버지 정운창(전남도당 조직부부장)과 어머니(남부군 정치지도원)의 삶을 재구성한 실화소설이다.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공안당국에 의해 판금조치 당했고,  이석표 대표는 구속돼 실형 선고를, 정지아는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했다. 빨치산의 딸은 2005년 2권으로 새롭게 재출간됐다. 

작가 정지아의 '지아'는 남로당 빨치산의 거점인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는 '고상욱'으로 딸은 '고아리'로 나온다. 이 소설의 화자인 아리는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에서 떴는데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운산인데,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로 여자 이름에 적당한 백아산을 따고 말았다고 푸념을 한다.

책표지
책표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줄거리

아버지 고상욱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카빈 소총을 들고 백운산을 누빈 빨치산이었다. 처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과 혁명을 포기하지 않고 평생을 사회주의로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딸 '아리'는 아버지가 그렇게 꿈꾸어 온 것들쯤은 이미 대한민국에서도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은 세상이 되었는데, 세상물정이라고는 모르는 아버지의 행동이 기가 막히고 우습기도 해서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하기 일쑤였다.

그런 아버지가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에 죽었다. '아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 소설의 첫문장부터 조롱조로 소개한다. 진지 일색의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유머라도 섞지 않으면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자신의 고달팠던 삶이 영원히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첫 문장부터 독자들을 배꼽을 살살 거드리며 내달리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첫 문장

아버지는 1948년 초, 단선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아버지 성기에 전선을 꽂고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고문은 사시 말고도 또 다른 후유증을 남겼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용케도 한약을 먹고 다시 정자가 활동하기 시작해 아리를 낳았다.

평생 투철한 유물자였고 맹렬한 혁명가로 살아온 아버지 고상욱 씨는 무엇보다 이웃들에게 사회주의자로써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시종일관 보였다.

생판 모르는 오데갈데 없는 방물장사에게 하룻밤을 재워주는가 하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빚보증을 서 떼이기가 다반사였고, 누가 사고라도 당했다고 하면 모내기 날이라도 꼭두새벽부터 달려 나가 늦은 밤에 돌아오곤 했다.

속이 다 탄 들어간 어머니가 보다 못해 "넘 사정은 그리 빤함시로 마누라 사정은 워째 깜깜 봉사까이."라고 한 마디라도 뱉어면, 고상욱 씨는 늘 "시끄러. 오죽흐먼 그러겄냐!"로 응대했고, 그래도 궁시렁 거리면, 예의 그 비장한 한 마디로 사태를 종결시키곤 했다.

"자네 혼차 잘 묵고 잘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능가? 자네는 대체 뭣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

고상욱 씨가 촌철살인을 하면, 어머니는 그야말로 주눅이 들어 입을 닫고 마는 것이었다. 고상욱 씨에 따르면 오죽했으면 방물장수가 하룻밤을 자는 것도 모자라 마늘 반접을 가져갔겠으며, 오죽했으면 빚도 못 갚아 야간도주를 했으며, 오죽했으면 나한테까지 도와달라고 했겠느냐는 거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항꾼에 한 마누라가 그걸 모르면 그 누가 이해하겠느냐는 거였다.

그래도 아리는 아버지가 진정한 유물론자나 혁명가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빨치산을 누빈 혁명가라면 어째 담배 하나도 못 끊을 것이며, 술도 못 끊고, 하동댁 엉덩이나 두드리고 다니겠느냐는 빈정거림이었다. 아리에게는 아버지가 믿는 민중도 그렇지 뭐, 이고 아버지도 그렇지 뭐 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웃긴 대목
내가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가장 빵 터졌던 대목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배꼽잡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등장한다.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빵 터졌던 대목은 동경제대 법학과를 나온 빨치산 동지가 노동이 너무 힘들고 싫어서, 더는 이렇게 못 살겠었어 북한에 간다고 신청했다며 아버지를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북이 고향도 아닌디, 자네가 북에 가먼 뭣을 하겄능가. 가난한 인민들 밥이나 축내겄제. 즈그 묵고 살 것도 읎는디····· 글지 말고 여개서 자네 잘허는 공부함시도 통일운동에 일조하먼 될 것 아닌가!"

한편 혁명가로서 아버지의 삶은 아리에게 평생 빨치산의 딸이라는 멍에를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친척들에게도 평생 회복되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리의 큰 집 오빠는 빨치산이었던 고상욱 씨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육사에도 가지 못해 폐인처럼 지내다 겨우 말단 공무원이 되었고, 당시 아홉 살이었던 작은 아버지는 고상욱 씨가 입산하고 온 마을이 불태워지고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다. 그날 이후 작은 아버지는 고상욱 씨를 보지 않았다.

이제 바야흐르 고상욱 씨의 장례식장. 딸 아리는 아버지가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 자신들의 아버지나 형의 장례식처럼 물심양면으로 진정을 다하는 걸 보고, 자기가 몰랐던 아버지의 이면을 돌아보게 되고 차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가 살았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진지모드로 돌입해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부모의 삶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가며 가슴을 울컥거리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도 장례식 마지막 날 찾아와 아버지와 화해하고 용서하고, 아리는 화장한 아버지를 생전 그가 자주 들러던 장소를 드

해방일지 속 아버지 어록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몬 인자라도 철이 날 나야 할 것 아니냐?"

아버지의 절친 박선생은 동생을 빨치산에서 잃고 평생 군대에 못 박았다가 예편해 교련선생을 하다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박 선생은 반동 신문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아버지는 뽈갱이 신문 한겨레를 본다.

"암만 혀도 자네는 유물론자가 아니구만. 죽으면 그걸로 끝인디 워디 묻히고 안 묻히고, 고거이 뭣이 중하대? 꼬실라서 니 펜한 대로 암 디나 뿌리삐레라. "

아리는 아버지의 평소 철학대로 화장하고 아버지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쯧! 하의 상은 되겄다."

아버지는 딸의 미모조차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준다. 9등급 중에 7등급. 아리는 아버지 평가에 상처받지는 않았지만 두고두고 아버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아버지와 자신이 무언가를,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워찌나 청산유순가 쎗바닥에 신이 내렸는 중 알았당게. 말문 터질라면 예수 믿어야 쓰겄대."

큰집 막내 숙자언니가 목사 중매로 결혼했는데 신랑이 말기암이었던지라, 유복자 딸 하나를 남기고 반년도 못 가고 죽고 말았다. 고상욱 씨가 사돈 댁을 엎으러 갔다가 끽소리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다.

“뉘 집 딸은 뉘 집 딸이여. 자네 딸이제."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 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겄다는 것이여!”

무슨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가 담배 태우는 여성 연기자를 보더니 뉘 집 딸내미인지, 혀를 쯧쯧 차자, 아버지가 한 말. 아리는 아버지가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고 생각한다.

"고상욱이 본 사람 손 들어!"
"고상욱이 우리 짝은 성인디요! 문척멘당위원장잉마요."

1948년. 아홉 살이었던 작은 아버지는 형을 자랑스러워했지만 한민당 지지자였던 할아버지가 총살당하고 마을이 불타자, 형을 평생 증오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해방일지 속 어머니 어록

"아이,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몸땡이, 비싼 꽃으로 처바르면 머 할 것이야."

아리는 제일 비싼 꽃을 고르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장례식 때 제일 싼 꽃을 골랐다. 어머니도 유물론자였고, 사회주의자였으나, 그것을 떠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평생으로 산 여자였다.

"아이고, 뉘집 딸내민고, 가시내가 담배를 다 태우네이."
"아이, 쫌 대줄 것을 그랬어야. 나가 노상 아팠잖아. 내 몸 한나도 워치케 못하겄는디 자꼬 건드려싼게, 나가 하로는 그랬어야. 차라리 딴 디 가서 허고 오씨요."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비판

작가 정지아는 위인전도 많이 썼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중후반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져 영 재미가 없어진다. 그것은 고상욱 씨를 사회주의자의 화신인 것처럼 우상화를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는 도덕교과서 읽는 줄, 이라며 말을 아꼈다.

장례식장 풍경도 그리 달갑지 않다. 고상욱 씨에게 어버이와 같은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그것은 허례허식이고, 지나치게 봉건적이고 위선적이다. 아마 고상욱 씨가 깨어난다면 "이 무신 자본주의 깐나쌔끼들이나 할 짓을 이리 뻔뻔하게 자랑삼아 한당가?"라고 개탄하지 않을까.

더구나 제자 40여명이 스승의 부친 장례식장에 우르르 몰려 와서 일사분란하게 일손을 돕는 묘사는 하루빨리 폐기되어야할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화장해서 공공연하게 유골을 뿌리는 묘사는 환경운동가들이 보면 기절할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이 모든 것들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난 세대의 과오를 참회하는 관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의 한계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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