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김난주 옮김, 소담출판사, 2021)는 열일곱, 여고생들의 학창 시절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이 단편집은 2005년 출간되었던 것으로 2021년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소설집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쓴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의 3대 여류작가로 불린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집이 실린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주인공들은 모두 열일곱 여고생들이다.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각자의 여고시절이 회상될 수도 있겠다.
작가 에쿠니 가오리 소개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화법으로 사랑받는 일본의 3대 여류작가.
1964년 동경에서 태어나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 상을 수상했다.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의 작은 새』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았고, 그 외 저서로 『제비꽃 설탕 절임』,『장미나무 비파나무 레몬나무』,『수박 향기』,『모모코』,『웨하스 의자』 등이 있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와 『도쿄 타워』, 『반짝반짝 빛나는』,『호텔선인장』,『낙하하는 저녁』,『울 준비는 되어 있다』 등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수록작품(목차)
손가락
초록 고양이
천국의 맛
사탕일기
비, 오이, 녹차
머리빗과 사인펜
역자 후기
독서 감상문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출판사 서평은 '열일곱 살 여고생들의 감정을 섬세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세련된 화법으로) 그려냈다.'라고 했으나 가오리의 문체는 (번역 때문인지)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었다. 내가 남자라 그런지 모르겠다.
다만, 작품 속 열일곱 주인공들의 감정과 열망들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나이에 가지는 감성들은 남자나 여자나 별반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인생에서 열일곱은 가장 찬란한 청춘의 시기가 아니던가.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첫 번째 수록 작품 <손가락>이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나머지 작품들은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단편 <손가락>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일곱 여고생 '기쿠코'는 등교하던 지하철 안에서 여자 치한 '치하루'를 만난다. 기쿠코는 치하루의 손이 재빨리 재킷 안으로 침입하여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는데도 불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기쿠코는 치하루의 손이 재킷 안에 있는 내내 숨을 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쿠코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불감증이다. 남자 친구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지만, 내 몸에 관한 것이니까 나는 안다. 나는 틀림없는 불감증이다. (34쪽)
기쿠코는 자신이 불감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지하철을 타면 치하루가 오늘은 타지 않았나 살피게 되는 이상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단편 <손가락>은 기쿠코의 감성을 따라가며 동성에 대한 야릇한 감정들이 이어지는 단편 소설이다. 치하루를 다시 만나게 되고, 기쿠코는 급기야는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가게 된다.
불현듯,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와 헤어져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끝난다는 것에. 나는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들보다 그녀와 보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48-49쪽)
그리고 치하루와 헤어지면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기쿠코는 느낀다. 청춘의 한 때, 그런 경험이 있었던 분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청춘의 성장통에 아련함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를 매개가 되어 각자의 고교시절을 떠올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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