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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장기하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

by 로그라인 2022. 8. 28.

장기하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뮤지션이 책을 냈다.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산문집이다. 나는 책을 잘 못 읽는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 나랑 같은 과? 하는 동질감이랄까.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장기하는 책을 읽다 딴생각에 빠지고 다 읽은 문장을 한 번 더 읽을 때도 많다고 했다. 책 읽을 때 눈동자 운동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하하.

그래서 장기하는 "책을 좋아하시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좀 켕기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또 많은 양을 읽지 못하더라도 책 읽는 시간이 즐겁다면 누구나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 속 문장
책을 늦게 읽으면 책을 잘 못 읽는 것일까?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는 그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도 없고, 뾰족한 수 같은 것도 없는, 그럼에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상의 사소한 것을 죄다 끌어내 쓴 글이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의 첫 번째 꼭지는 '안경과 왼손'이다. 장기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국소성'이라는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되는 질환이다.

장기하는 프로 드러머가 꿈이었고,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드럼을 연주하려고 할 때마다 왼손이 꼭 쪼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소성 이긴장증으로 군악대를 포기했고, 훗날 '장기하의 얼굴들' 밴드 활동 때에는 기타도 칠 수 없어 기타도 접게 되었다.

국소성 이긴장증이 프로 드러머의 꿈을 접게 만들었고, 공연에서 기타 연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이었던 국소성 이긴장증은 그에게 두 가지 선물도 주었다. 프로 드러머의 꿈을 접은 대신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게 했고, 새 기타리스트를 영입함으로써 장기하는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소성 이긴장증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회복되었다고 한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장기하는 자신의 경험에서 터득한 깨달음을 위와 같은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다.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깨끗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하더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낙천적이고 깨끗한 포기인가.

장기하 프로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 싱글 '싸구려 커피'로 데뷔했다. 눈뜨고 코베인(2002~2008)에서 드러머로 활동했고, 장기하와 얼굴들(2008~2018)의 보컬이자 리더로 활약했다. 지금은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한때, 장기하와 아이유가 1년 3개월가량 교제했다 결별했음을 양측 소속사가 2017년 밝히기도 했었다.

장기하 노래 모음

정규 앨범 수록곡

2집 수록곡

그렇고 그런 사이,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TV를 봤네,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깊은 밤 전화번호부, 우리 지금 만나, 그때 그 노래, 마냥 걷는다,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3집 수록곡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 사람, 구두쇠, 올 생각을 않네, 좋다 말았네, 잊히지 않네, 기억 안 나, 알 수 없는 사람, 사람의 마음,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싱글

2022년 2월 22일, 공중부양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OST '풍문으로 들었소'를 리메이크하여 불렀다.

책표지
문학동네, 2020년.

상관없는 거 아닌가? 감상문

프롤로그부터 한 꼭지 한 꼭지 읽어갈 때마다 뮤지션이 이렇게 글도 잘 써도 돼?라는 기분이 들었다. 술에 대한 단상, 냉장고를 열면서 드는 온갖 생각들,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쓴 '아무것도 안 하기'를 다짐하는 마음가짐, 다 좋았다. 장기하의 학력이 서울대 출신에서 오는 불편함을 담은 글도 솔직 담백해서 좋았다.

그런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는 신선한 즐거움은 1/3 지점까지였던 것 같다.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하품이 나며 지루해졌다. 후반부는 식상함으로 졸음을 참으며 겨우 읽어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일상이 뿜어내는 지루함에서 기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정해진 주제가 있는 책이 아닌 일기 같은 산문집이다. 어떤 사람의 일기라도 책으로 된 걸 읽으면 아마 똑같은 매너리즘에 빠져들 것 같다.

티스토리에는 해외에서 생활하는 아줌마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감칠맛 나게 써서 엄청난 구독자수와 페이지뷰를 자랑하는 블로그들이 있다. 그 글들을 처음 읽었을 때 이국적인 신선함으로 재미 있게 읽었다.

그러나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자꾸 읽기에는 몬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 어쩔수 없이 묻어났다. 그런데, 책으로 인쇄된 블로그 글을 각 잡고 한꺼번에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가 되는 매너리즘의 연속. 상관없는 거 아닌가? 는 정제되었을뿐, 블로그 어디쯤엔가 위치할 그런 류의 글들이었다.

책 속 문장
종심, 마음대로 살아도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일상을 소재로 다루다 보니, 장기하는 음식도 기분대로 먹으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억지주장을 펴기도 한다. 자기는 양념치킨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먹는 동안에는 기가 막히게 맛있지만, 먹고 나면 여지없이 기분이 안 좋아지게 때문에 자주 먹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십 년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양념치킨을 먹고 나면 속이 부대낀다는 말이다. 먹고 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말은 그의 속이 이미 고장 나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기분대로 먹으면 그렇게 되는데, 음식도 기분대로 먹으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사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두루 관통하고 있다. 장기하는 데뷔곡 '싸구려 커피'가 천운을 얻어 대박을 쳐서 10년을 먹여 살렸다고 했다. 만약 데뷔곡이 망했다면, 그는 이렇게 평온하고 안락한 산문을 쓰고 있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에 이를 수 있었다고 했다. 기분대는 먹으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말은 종심의 경지나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소소한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는 건 별로 없다. 이리 걸리고 절리 걸리는 일 투성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 장기하와 같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는 일상은 그저 소소한 일상일 뿐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상마저도 그날그날 해결해야 할 과업으로 맹렬한 속도로 매 순간 다가오지 않던가.

그럼에도 상관없는 일 아닌가?를 읽은 소득은 있다. 나는 음악을 틀어놓으면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음악을 듣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 가족 중에 나만 그렇다. 그런 내가 장기하라는 뮤지션을 비로소 알게 됐고, 우리나라 대중 음악에도 관심이 조금 생겼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서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들에 너무 마음 쓰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자, 라는 마음이 조금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생은 쏜살같으니, 모든 일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글도 내 마음 가는대로 가볍게 썼다. 뭐, 상관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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