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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2023 현대문학상 수상작, 안보윤의 어떤 진심

by 로그라인 2023. 5. 24.

안보윤의 「어떤 진심」은 2023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2023 현대문학상은 2021년 12월호~2022년 11월호(계간지 2021년 겨울호~2022년 가을호) 사이, 각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 선정된다.

수상후보작으로는 문진영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박지영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이서수 「엉킨 소매」, 위수정 「몸과 빛」, 윤보인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이승은 「우린 정말 몰랐어요」, 이장욱 「요루」가 선정되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과 수상후보작들은 모두 작품 수준이 고르고  생각거리들이 많이 쌓인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진심>(2023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대문학, 2022)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작가 안보윤 소개

1981년 인천 출생으로,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다녔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 모음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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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심 줄거리

오유란은 아홉 살 때 엄마를 따라 교회의 좁다란 삼각형 방에서 살게 되었다. 신도들은 유란의 엄마를 사모님이라고 불렀지만 유란을 부를 때는 주춤하거나 아가야,라고 알버무리다가 어느 날부터 열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황 목사가 유란을 꼭 끌어안으며 우리 귀한 열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유란은 그 교회의 첫 번째 열매가 되었다.

황 목사의 아내가 이혼해 주지 않아 유란의 엄마는 삼각형 방에서 오래 살았다. 유란의 엄마는 뜨개 공방과 스무 평 아파트를 팔아 교회에 몽땅 기부했다. 유란의 엄마는 그녀가 어렸을 때 우리 영혼이 길을 잃어 헤매고 있을 때 붙잡아주신 고마운 분이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분이야,라고 꾸벅꾸벅 조는 그녀의 귀에 주문 같은 말들을 매일같이 속삭였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자란 유란이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우리 영혼은 불안정해요. 거짓과 욕심으로 얼룩진 영혼을 정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빛나는 세계로 가려면 반드시 인도자, 구원자가 필요해요."라고 말했을 때 선생은 유란의 머리를 꽉꽉 누르듯 쓰다듬으며 그게 요즘 너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세계관이니? 장난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때 유란은 진심이었지만 친구들로부터 외톨이가 되어갔다. 땅이 꺼지고 지옥 불이 솟구치는 때에야 알게 되겠지, 너희들의 오염된 영혼 같은 건 아무도 거들떠봐주지 않을 거라고 유란은 그들을 저주했다.

유란은 그때는 진심이었다 생각하면서도 스무네 살인 현재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진심>은 유란이 이서라는 아이를 씨앗으로 고르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 아이는 척추가 곧지 못하구나, 한쪽 어깨를 으쓱이듯 걷는 고1 이서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유란은 이서에게 수학 과외를 하며 외로운 이서에게 언니가 되었다.

유란이 고른 씨앗들은 이탈률이 적고 충성도가 높아 그녀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란의 유일한 친구 민주도 그녀가 고른 씨앗이었다. 민주는 풍성한 열매가 되어 신도들의 아이 돌보미, 레크리에이션과 공연 담당을 했고 수련원이 생긴 뒤에는 청소년 돌봄도 겸했다. 민주의 선량한 눈매와 성실함은 모든 일에 진심이었고, 그럴수록 더더욱 복잡하게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즈음 황 목사는 연단 위에서 자주 울먹였다. 마분지 구기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짐짓 흐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더 많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이 혼탁한 세계의 간악한 삶을 견뎌내느라 불타고 더러워진 영혼들을 어떻게든 구해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너무 미약합니다. 제가 너무 작습니다. 제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큰 성전이 있었다면···
여러분,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작고 미력한 존재라 미안합니다. 황 목사는 가슴을 꽝꽝 두드리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 어떤 진심 31쪽, 황 목사의 진심

그럴 때마다 신도들은 더 많은 재산을 헌납하고 더 많은 씨앗을 긁어모았다.

유란은 어떤 진심은 진심이라 한심했고, 어떤 진심은 너무 빨리 변질됐고, 어떤 진심은 추해졌고 어떤 진심은 다만 견뎌내는 삶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이서가 유란이 살고 있는 교회로 찾아오며 끝난다. 이젠 누구도 진심이 아닌 곳에, 오직 열매들만이 진심인 채 남아 있는 곳으로.

어떤 진심 독후감

어린 유란의 눈에는 엄마의 말도 진심으로 들렸고, 황 목사의 예배도 진심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잘못이라 할 수 없었고, 어른들의 책임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유란이 상처 입고 외로운 영혼들을 교회의 열매로 포섭하는 건 어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의 책임일 것이다. 다만 견뎌내는 삶도 어떤 진심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 소설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유란이 포섭하고 신도들이 표적으로 삼았던 영혼들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가끔 길을 가다가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불쾌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왜 그렇게 불쾌했는지 그 이유가 더욱 뚜렷해진다.

소설가 안보윤의 문장들은 한적한 개울, 차가운 물 아래 작은 돌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는 소근거림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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