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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외국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책 줄거리, 통속 연애소설의 묘미

by 로그라인 2023. 4. 24.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연애소설

연애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여주의 이야기를 쓰고, 츠지 히토나리가 남주의 이야기를 써서 한 회씩 번갈아가며 2년간 잡지에 연재한 것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는 연재하는 동안 실제로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신적인 외도를 한 셈인가 싶었다. 이 소설의 한국어판 번역은 양억관, 김난부 부부가 했는데, 김난주 번역본은 오역이 특히 많다고 한다.

나는 도서관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 제목만 보고 당연히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이거니 생각해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몇몇 소설을 읽어보고 실망을 했지만, 마지막으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소설은 읽고 끝내자는 심산이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2000년에 초판 출간된 소설인데, 책을 읽어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최근작보다 문장이 한결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았다. 어, 이 작가는 어째 초기작이 더 수준이 높은 걸까 의아해하면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 후기를 읽어보니 아뿔싸,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가 아닌 '츠지 히토나리'였다! 

어이쿠, 내가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냉정과 열정 사이>(츠지 히토나리, 양억관 옮김, 소담 출판사, 2000>는 초판본이라 큰 제목 아래 작가의 이름이 아주 작은 글씨체로 인쇄되어 있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리뷰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Rosso)가 아닌 츠지 히토나리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Blu)>를 읽고 쓴 글이다.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이나 츠지 히토나리가 쓴 소설 모두 줄거리는 똑같다.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쓴 소설이니 줄거리가 같은 건 당연하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의 줄거리 또한 거의 똑같다. 연애소설이 줄거리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츠지 히토나리 프로필

1959년 동경에서 태어나 1981년 록밴드 '에코즈'를 결성한 그는 뮤지션으로 활약하다가 1989년 '피아니시모'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다.

초기작 '클라우디'와 1997년 제116회 '아쿠다가와 상' 수상작 '해협의 빛'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그는 현재 일본에서 뮤지션, 배우,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츠지 히토나리는 작가 공지영과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함께 쓰고 국내 영화제에도 참석했다. 여성 작가와 공동 작업을 하는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책표지
책표지

냉정과 열정 사이 책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 쥰세이는 대학 때 만난 아오이와 연인이 된다. 연애로 가장 빛나는 나날을 보내던 스무 살 아오이는 쥰세이에게 자신의 서른 살 생일날에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자고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98쪽
서른 살 때 생일 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쥰셰이와 아오이

이 부분을 읽을 때 오 헨리의 걸작 단편선 <20년 후>(1906)가 생각나고, 푸폴라 위라는 설정에서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예쁘게 나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이 생각났다.

뭐, 어쨌든 알콩달콩하던 연인이 우리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꺼내면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별을 예비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이든 영화든 이런 클리셰가 등장하면 그 줄거리와 결말은 너무 뻔해지기 마련인데, 그 식상함을 극복하는 것이 작가의 실력이다. 

아무튼 이유 없이 떠나버린 아오이와 헤어진 쥰세이는 고미술품 유화 복원사가 되기 위해  피렌체 조반나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메미라는 애인이 생긴 쥰세이는 또 공방 선생 조반나의 나체 모델도 하면서 야릇한 관계를 이어 간다.

어느 날, 쥰세이가 복원 작업을 하던 프란체스코 코사의 유채화가 칼로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되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조반나의 공방은 문을 닫게 되고 쥰세이는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 돌아온 쥰세이는 자살로 알고 있었던 어머니의 죽음이 사실은 자기 아버지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오이 역시, 아버지 때문에 떠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오이는 감히 너 따위가 내 아들과 결혼을 하려고 생각해?라는 쥰세이 아버지의 폭언을 듣고 유산을 하고 떠난 것이었고, 지금은 밀라노에서 미국인 애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아오이와 헤어지고 난 8년 동안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시라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오이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쥰세이는 애인 메미를 버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렌체로 향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217쪽

쥰세이는 자신이 메미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메미의 한국인 친구 인수에게 말해주는데, 내가 보기엔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변명 같다. (나는 일본 작품에서 개연성이 별로 없이 한국인이 등장하면 이유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쥰세이는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하루종일 아오이를 코가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황혼 무렵이 되어서야 아오이는 거짓말처럼 짠 나타난다. 아오이도 애인을 버리고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딱 사흘간 쥰세이와 밀회를 즐긴 그녀는 다시 밀라노의 애인한테 돌아가 버린다.

그럼에도 소설의 마지막 결말부에서 쥰세이는 다시 희망을 품으며 밀라노 특급 열차에 올라탄다.

냉정과 열정사이(Blu) 독후감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 이 소설 역시 <도쿄 타워>보다는 덜하지만 섹스 장면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묘사하는지 혀를 내둘렀다. 지나치게 과도하고, 필요이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영화 같으면 완전 살색이 난무하는 영화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관람 등급이 15세이니까 그런 부분을 상당 부분 쳐내고 편집했으리라 생각된다.

10년 동안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하고 살다가 조그만 가능성이 보이자 현재의 애인을 버리고 옛 애인에게 달려가는 쥰세이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남자친구 아버지의 폭언 때문에 이별을 선택하는 아오이 역시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냉정과 열정 사이는 통속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냥 감정대로 움직이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불필요한 자극만을 일삼는 묘사가 난무하니까 말이다. 이런 소설이 베스트셀러였다니, 그 시절의 감성이었나 보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 자극적 소재의 연애 소설

에쿠니 가오리의 (소담 출판사, 2020)는 2005년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베스터셀러에 올랐다가 출판 15주년을 기념해 2020년 개정판을 낸 연애 소설이다.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어릴 적에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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