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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장르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 없는 살인의 밤, 단편 추리소설 추천

by 로그라인 2023. 6. 29.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없는 살인의 밤(윤성원 옮김, 알에치코리아, 2009)은 작가의 초기작 7편을 묶은 단편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학원물도 있고 의외성이 돋보이는 단편도 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장편보다 오히려 단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은 장황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단편은 문장도 나름 정제되어 있고, 추리 소설을 읽는 맛도 중구부언하지 않고 간결하게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중에서 반전이 가장 돋보이는 소설은 <위험한 비너스>(2017)↗이다. 반전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추리 소설이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수록작품

· 작은 고의
· 어둠 속의 두 사람
· 춤추는 아이
· 하얀 흉기
· 굿바이, 코치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옮긴이의 말

히가시노 게이고 프로필

1958년 오사카 출생. 고등학교 때 추리소설 습작을 했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했다. 1985년 추리소설 방과 후로 에도가와란 포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갈릴레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용의자 X의 헌신으로 2006년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주오코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패러디한 그녀는 다 계획 있다(원제 쿄코의 꿈 - 컴퍼니언 살인사건),  백조와 박쥐, 공허한 십자가, 희망의 끈,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방황하는 칼날, 녹나무의 파수꾼, 백야행,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줄거리

소스케 씨 댁에서 가정교사 안도 유키코가 가슴에 칼이 찔린 채로 발견된다. 소스케 씨의 아들 다카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다카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또 다른 가정교사 다쿠야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손목에 손가락을 대더니 그녀가 죽었다고 말한다. 안도 유키코는 어떻게 칼에 찔렸을까?

다카오와 안도 유키코가 말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카오가 유키코를 힘껏 밀치는 바람에 유키코가 작은 탁자 쪽으로 쓰려졌다. 그때 테이블 위에 과일을 담아둔 그릇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 있던 칼이 유키코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고 다카오는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듣고 집 안에 있던 모두가 달려왔다.

안도 유키코가 어떻게 칼에 찔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위의 정보는 소설 단편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후반부에 가서야 제공된다. 이는 누가 왜? 안도 유키코를 살해하였을까에 관심을 계속 돌리게 하면서 독자가 정작 사건의 실마리가 될 단서에는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묘한 전략이다.

아무튼, 소스케 씨는 가정교사 안도 유키코가 아들의 칼에 찔려 숨지자, 사건을 은폐하기로 하고 다쿠야에게 뒷수습을 부탁한다.

그날 현장에는 소스케 씨, 그의 부인 도키에, 큰아들 마사키와 막내 다카오, 다카오의 가정교사인 다쿠야, 다섯 명이 있었다. 다섯 명은 서로 입을 맞추고 다큐야와 마사키가 야심한 밤에 멀리 산속으로 가서 시신을 매장하기로 했다 소스케 씨가 그들이 출발할 때 졸음 방지용이라며 껌을 건넸다.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유키코의 오빠 안도 가즈오가 나타났다. 유키코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그녀를 만난 적이 있는지 소스케 부부에게 캐묻고 다녔다. 부부는 모른다고 발뺌은 했으나 불안해한다. 

그 후 폭우로 산사태가 났고 다큐야가 묻었던 사체가 드러났다. 그들의 예상보다 사체가 너무 빨리 세상에 드러났다. 형사 다카노와 오다가 탐문 수사를 시작했고, 그들은 은폐했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다카노가 사체가 들어있던 널빤지 상자에서 등대꽃 잎사귀를 제시하자 소스케 씨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등대꽃은 소스케 씨 집의 담장울타리도 등대꽃이었던 것이다. 등대꽃의 결정적 증거에 다카오는 순순히 자백한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위에서 인용했던 안도 유키고가 어떻게 칼에 찔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듯하다. 하지만 사건이 여기서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 아니다. 게이고는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결말을 준비해 두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결말(스포일러)

형사 다카노는 시신의 목에 걸려 있었던 껌에 주목했다. 마사키가 사체를 매장으로 하러 산으로 갈 때 껌을 씹었다고 진술했었다. 그렇다면 안도 유키코는 껌을 씹다 매장되기 직전 살해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범인은 다쿠야였다. 안도 유키코는 소스케 씨에게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다쿠야는 돈을 뜯어내려면 약점을 만들어야 한다며 안도 유키코에 칼에 찔린 채 죽은 척하자고 제안했다. 다쿠야는 범행에 소스케 전처의 아들인 마사키도 끌어들였다. 

그런데 다쿠야는 사전 모의와는 달리 산속에서 안도 유키코를 죽여버렸다. 그 이튿날, 다쿠야는 그의 애인 가와이 마사미를 새로운 가정교사로 소스케 씨에 들였다. 다쿠야는 안도 유키코를 '마시미'라는 가명으로 가정교사로 일하게 했었다.

추리소설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사건이 일어났던 '밤' 꼭지와 그 이후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라는 꼭지가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의  화자는 다쿠야이고 '밤'의 화자는 안도 유키코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들이 '밤'의 화자는 당연히 마사미일 것이라고 추정하게끔 서술트릭을 썼다. 이 정도면 사기에 가깝게 독자를 우롱하는 서술트릭이다. ㅋ

서술 트릭으로 시작된 부분
다른 네명에 시체를 포함시킬 독자는 없으리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서술 트릭은 단편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의 초반부에 나온다. 작가는 사건 현장에 다른 네 명이 있다고 하면서 '나'가 누군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마사미로 혼동하도록 만들었다.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은 재미가 있었다. 책장을 덮으며 아, 뭐야를 연발하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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