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독후감
김선영의 <시간을 파는 상점>(자음과 모음, 2012)은 어른들도 많이 읽은 청소년소설이다. 우리 집만 해도 아이 둘, 어른 둘이 모두 읽었으니까, 인기가 대단했던 걸로 기억된다. 서지사항을 보니 2013년 3월 22일 인쇄본인데 35쇄가 찍혔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청소년소설임에도 플롯 전개가 빠르고 문장도 단단해서 빨리 읽힌다. 청소년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도덕적인 강박도 많이 보이지 않고, 어른이 청소년을 대변하는 듯한 위세도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그래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훈훈하게 흘러가다 엔딩을 치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김선영 작가 프로필
1966년 충북 청원 출생. 200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밀례>로 등단했다.
2011년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제1회 자음과 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집 <밀례>와 장편소설 <특별한 배달>, <열흘간의 낯선 바람>, <시간을 파는 상점 2> 등이 있다.
시간을 파는 상점 줄거리
온조의 엄마 아빠가 서로 반한 건 지리산 계곡물이 엄청나게 불어났을 때였다. 당시 엄마는 야생동물 캠프를 주관하는 환경단체의 간사를 맡고 있었고, 아빠는 소방대원이었다. 지리산 야생동물 캠프가 열리고 있을 때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캠프 참가자들은 조난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온조 엄마 아빠는 여름철 장맛비가 맺어준 인연이었다. 하지만 온조 아빠는 온조가 중학생이 되자마자 교통사고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온조는 혼자 일하는 엄마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제과점에서 알바를 시작했지만 부도덕한 점장에 맞서다 해고되었고, 베트남 쌀국숫집 알바는 코피가 나는 바람에 사흘 만에 관두게 되었다.
온조는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되는 거 아님?이라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인터넷에 오픈한 것이다. 주인장 온조의 아이디는 '크로노스'였다.
크로노스(Chronos)는 그리스 신화에서 객관적인 시간을 주관하는 신의 이름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크로노스를 시간의 신이자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거세하고, 아들들을 집어삼킨 신과 혼동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그 신은 이름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신인 크로노스(Kronos)이다. 이 크로노스가 제우스를 빼고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다 잡아먹어버린 농경의 신, 크로노스이다.
어쨌든 크로노스는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라는 문구를 걸고 당차게 영업을 시작한다.
시간을 파는 상점 첫 번째 의뢰인은 아이디 '네 곁에'였다. 그의 의뢰는 교실에서 누군가 급우의 PMP를 훔치는 걸 목격하고 그 PMP를 온조의 사물함에 넣어두었으니 PMP를 원래 주인이었던 학생에게 몰래 되돌려 주라는 거였다.
두 번째 의뢰인은 '강토'였다. 그의 의뢰는 자기 대신에 할아버지의 점심을 맛있게 먹어달라는 거였다. 온조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시간은 크로노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경험하기에 따라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회와 평생 동안 기억되는 순간을 관장하는 신, 카이로스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간을 파는 상점 세 번째 의뢰인은 아이디 '풀꽃자유'였다. 그의 의뢰는 한 달에 두 번 지정한 곳에 편지를 직접 배달해 달라는 거였다. 온조는 한 달에 두 번 우편을 배달하러 갈 때마다 꽃편지를 들고 동화 속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온조는 이때만큼은 천국의 속삭임을 듣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네 곁에'가 의뢰한 사건을 중심축으로 독자들과 밀당하며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PMP를 누가 왜 훔쳤지? 네 곁에는 왜 그것을 온조에게 의뢰했지? 하는 궁금함들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바람의 언덕에서 정점을 찍는다.
시간을 파는 상점 결말
여기서 줄거리를 미주알고주알 까발리게 되면 나중에 소설을 읽게 될 독자들의 재미를 앗아가는 결과가 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성인소설은 결말을 알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지만.
다만 시간의 상점을 운영하면서 온조가 인생에 가로놓인 시간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한 뼘 성장하여 단단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미리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거의 모든 청소년소설처럼 이 소설 또한 훈훈하게 해피엔딩이다.
온조가 말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시간이라는 신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가 그 시간을 매순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어딘가로 도착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빛나든 빛나지 않든.
사족으로 이 소설에는 결함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PMP의 이동 경로이다. 소설에서는 PMP 주인 → 훔친 자 → 네 곁에 → 온조→ PMP 주인 순으로 흘러간다. 즉, PMP 주인 → 훔친 자→ 네 곁에→ PMP 주인 순으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온조를 개입시킨 당위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치명적인 결함인데, 시간을 파는 상점이 하는 일은 온조도 항변했듯이 한때 유행했던 결혼식 하객 알바나 친구 알바 등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소설이 덧없어지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자.
책 속 시간에 대한 문장
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 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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