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단순한 열정을 기록한 대담한 일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탐닉>(조용희 옮김, 문학동네, 2004)은 처연한 사랑의 기록이자 격정적인 욕망의 기록이다. 아니 에르노는 1991년 소련 외교관 S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고 10년이 지난 2001년, 그녀가 그 시기에 썼던 일기를 묶은 <탐닉>을 발표했다.
소설 탐닉은 아니 에르노가 소련 외교관 S와 사랑에 빠졌던 시기(1988년 9월 27일에서 1989년 11월 6일까지)에 쓴 일기와 그가 소련으로 떠난 이후 사랑에 대한 여운을 기록한 1990년 4월 9일까지의 일기가 담겨있다.
그러니까 탐닉은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 기록하지 못한 산문적인 서사를 확인해 볼 수 각주 인 셈이다. <탐닉>을 읽으며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욕망을 미학적인 고려는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기록한 1988년 10월 18일과 19일의 일기를 보자.
작가는 매 순간 흘러가는 현재를 따라가며 그를 사랑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온갖 일들과 상념들을 오롯이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다. 그것은 그리움이었고 사랑이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자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아니 에르노 프로필과 단순한 열정
작가 아니 에르노의 프로필과 단순한 열정은 이전 글에서 다루었으니, 아래 글을 참고하시면 된다. 다만, 작가는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낫을 들고 어머니를 죽이려는 트라우마를 안고 하류계층을 벗어나려는 필사의 노력으로 교수가 됐고 작가도 되었다는 점을 첨언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공허한 삶을 견디어내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 작가는 지적이고 '탄탄한' 남자와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나가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애무와 욕망, 꿈, 환상 들로 삶을 대체했다. 작가의 곁에 잠시 머물러 있는 남자가 작가의 유일한 현실이 되었고, 탐닉을 쓰는 시기에는 그 남자가 소련 외교관 'S' 였다.
사랑의 색깔
'사랑'이라고 하면 우리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예쁜 것들과 대개 연관 지어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격정적이다 못해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해서 처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랑도 있다. 아니 에르노의 사랑은 아마 그런 색깔을 띨 것 같다. 그녀의 삶과 사랑을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은 처연함을 느끼곤 한다.
물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탐닉을 읽으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것은 독자의 자유니까. 그렇다고 해도 탐닉에는 사랑에 빠지면 나타나는 다채로운 현상들,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떠나가면 나타나는 예후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최소한 사랑의 실체를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에르노보다 실체적인 삶과 사랑을 대담한 용기로 기록해 나간 작가는 지금껏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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