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공허한 십자가>(이선희 옮김, 자음과 모음, 2022)는 어린 딸과 전 아내가 무참히 살해당한 후 주인공이 사형제도의 모순을 고뇌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2014년 일본에서 발표된 이 소설은 우니라나에도 2014년 번역출간되었다가 2022년 표지를 새롭게 해서 재출간되었다.
공허한 십자가는 러프하게나마 사형제도의 모순과 문제점을 환기시키는데 일정 부분 공을 세운 것 같다. 다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형제도 폐지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일본 사법체계의 비판에만 골몰하다가, 오히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프로필 소개
1958년 오사카 출생. 고등학교 때 추리소설 습작을 했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했다.
1985년 추리소설 <방과 후>로 에도가와란 포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갈릴레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용의자 X의 헌신>으로 2006년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주오코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패러디한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원제 쿄코의 꿈 - 컴퍼니언 살인사건), <백조와 박쥐>, <공허한 십자가>,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방황하는 칼날>, <녹나무의 파수꾼>, <백야행>, <숙명>,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희망의 끈>,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중에서 반전이 가장 돋보이는 소설은 <위험한 비너스>(2017)↗이다. 반전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추리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줄거리
이구치 사오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를 뇌종양으로 잃고 아빠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사오리는 남몰래 좋아하던 한 학년 선배 후미야와 우연히 가까워지고 사랑을 고백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나카하라는 11년 전 어린 딸이 좀도둑에게 살해당 당하고,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내 사요코와 5년 전에 이혼하고 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경시청 수사 1과의 형사 사야마가 찾아온다.
공허한 십자가 프롤로그에서 사오리와 후미야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는 걸 보고, 로맨틱 미스터리가 시작되나 생각했으나 이후 줄거리에서 정리하듯이 사오리와 후미야는 이 이야기의 결말부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ㅠ
형사 사야마가 나카하라에게 찾아온 이유는 나카하라의 전 아내 사요코가 그녀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어떤 노인이 찌른 칼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일본경찰의 수사기법을 옹호하는 지루하고 장황한 설명을 듣게 된다.
일본 경찰은 11년 전에 딸이 좀도둑이 집에 침입하여 딸을 살해한 정황이 분명했는데도, 수사상황을 부모에게 알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딸의 엄마를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고 밤샘 취조를 했다.
이번에는 비록 전 아내가 살해당했는데도 형사는 나카하라에게 살해당시의 정황이나 수사상황 등은 알려주지 않고 은근히 나카하라를 용의자 취급하듯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의하면 그게 수사기밀이며, 수사기법이란다. 그 공허한 헛소리들의 분량도 꽤 된다.
아무튼, 나카하라는 전 아내지만 이름도 모르는 어떤 노인에게 왜 살해당하였는지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사요코는 나카하라와 이혼 후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이라는 폭력>이라는 책을 집필 중이었고, 잡지사에 취직하여 도벽증에 중독된 여성들을 취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카하라는 알게 된다.
그런데 전 아내 사요코를 찔러 죽인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수한다. 그냥 용돈이 없어 돈을 노리고 우발적으로 그녀를 찔러 죽였다는 것이다. 그 노인의 사위는 게이메이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의 소아병원 소아과 의사, 후미야였다.
나카하라는 취재 대상 중에 사오리와 전 아내의 유품에서 발견된 게이메이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의 소아병원 개원 행사 안내장에 주목하게 된다. 후미야가 소아과 의사로 있는 그 병원이다.
나카하라가 자체 조사한 결과 사오리와 후미야는 고향이 같았고,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어 그런데 후미야의 아내는 사오리가 아니라 다른 여자랑 결혼했네? 사춘기 때 그렇게 둘이 사랑했는데, 어찌 된 걸까? 하긴 첫사랑이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결말
하여간, 살인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사요코는 도벽에 중독된 여자들을 취재하던 중, 사오리가 가슴에 묻어둔 큰 비밀을 알게 된다.
후미야를 열렬히 사랑하던 사오리는 후미야의 아이를 덜컥 임신하고 만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후미야와 사오리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아이를 죽인 후 아오키가하라의 수해(나무가 바다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 매장하고, 이 비밀은 영원히 둘의 가슴에 묻어두자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후미야와 사오리의 사랑은 자연히 깨어졌다. 후미야는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며 사오리는 매춘업소를 전전하다 그 죄를 잊기 위해 도벽이 생겼다.
사요코가 도벽증을 진정으로 극복하려면 오래전 아이를 묻은 일을 자수하는 길 밖에 없다고 설득했으나 후미야의 명성에 금이 간다고 사오리가 걱정하자, 사요코는 후미야까지 자수를 설득하러 찾아간다.
그때 마침 사위집에 놀러 와 있었던 장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사위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며 비밀을 영원히 묻기 위해 사요코를 몰래 따라가 그녀를 살해한 것이었다. 사건의 진상은 그렇게 싱겁게 밝혀졌다.
"난, 당신 남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요."
사요코가 후미야 아내 하나에에게 반 협박조로 한 말. 이 말은 후미야의 장인이 들었다.
공허한 십자가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사형제 찬반에 대한 논쟁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아 여기서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어 생략한다.
그러나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의 사례에 보듯이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그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므로 국가가 할 일은 애먼 사람들을 잡아다가 오심하여 사형을 판결하거나 실효성 없는 사형을 집행하는 것만으로 지 할 일을 다했다고 생색을 내고 뒷짐 지고 내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할 일은 피해자들이 비극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섬세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 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강화하는 길 뿐이다. 그랬다면 나카하라 부부가 이혼하는 일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는 추리 소설이 아니다. 독자들이 풀어나갈 퍼즐 조각은 그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냥 이랬다, 이래서 사건이 이렇게 진행되었다고 사후에 알려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사회파 소설로 분류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고뇌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데뷔 이후 1년에 한 두 편씩 발표해 온 다작 작가의 한계일 것이다. 사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좀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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