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불면증에 대한 마리나 벤저민의 감성과 해결책
불면증으로 고생을 좀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불면증'하면 눈이 번쩍 뜨이게 마련이다. 마리나 벤저민의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마시멜로, 2022)도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아, 이 사람도 불면증으로 꽤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렇길래 이렇게 책까지 냈지 하는 마음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보게 된 것이다.
작가 소개
마리나 벤저민은 글쓰기, 가족 이야기, 회고록 등 다양한 논픽션 분야의 글과 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다. 저서로는 죽음에 대한 인류의 강박을 다룬 <세상의 끝에 살다>, 우주여행을 그린 <로켓의 꿈>,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바빌론 최후의 날>이 있다. 국내에는 <중년, 잠시 멈춤>이 번역되어 있다.
《이브닝 스탠더드》와 《뉴 스테이츠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글을 기고하였고, 현재 디지털 매거진 《이온》의 선임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작가가 문필가인 것만큼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불면증 치료를 위한 병리학적 접근이라기보다 불면증을 소재로 한 문학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가 숱하게 보낸 불면의 밤들에 대한 불가해한 감정과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다.
불면증의 어원
불면증. 명사.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 불면증이라는 단어는 수면의 부재를 뜻하는 라틴어 '인섬니스 insomnis'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그리스인들은 불면 상태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바로 '아그립노틱 agrypnotic'이다. 아그립노틱은 각성 상태를 뜻하는 아그루 포스와 잠을 뜻하는 힙노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면의 신)의 합성어다. 그렇다면 불면증은 단순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부재하는 무언가를 쫒는 추적이라고 작가는 해석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불면증을 해결하려면, 불면증에 좋은 음식, 불면증에 좋은 환경 등이 사실은 불면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의 저자 마리나 벤저민도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허상에 불과한 수면 분석이나 불면증 치료 시장이 거대 경제로 성장하고 있는 상업적인 현실을 개탄한다.
불면증은 불치병에 가깝다. 불면증을 쉽게 치유할 수 없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문학적인 답변이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을 읽다 보면 그간 인류 역사에서 시행되어온 온갖 불면증에 관한 치료방법들이 대거 등장한다. 애리조나대학교 통합의료센터의 심리학자 루빈 나이먼은 수면 보조용품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젤로 만든 안대나 무거운 담요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잠을 자려면 몸이 단단히 고정 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대를 초월한 교훈이라고 말한다. 화단에 파묻힌 식물처럼 몸은 고정되어야 하고 시간의 강바닥으로 가라앉아야만 한다고 말이다.
불면증에 사로잡히면 저자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공감 가는 어록이 빼꼭하게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불면증 환자라면 다들 알겠지만, 잠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잠은 더 멀리 달아난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잠에 부치는 헌정 시 <잠에게>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지난밤과 앞선 두 밤처럼,
잠이여, 나 그처럼 누워 은밀히 애써도
너를 얻지 못하였노라. (96 ~ 97쪽)
저자 벤저민은 남편을 잠꾸러기 쿨쿨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불면증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리고 불면증으로 고통받았던 문인들의 글과 작품들도 인용하며 감성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세상에 나 혼자 깨어 있었던 것이 아니네, 아- 이 소설가도 불면의 밤을 숱하게 보냈구나, 하는 공감 가는 재미로 일게 되는 책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이다.
책 속 문장들
저자는 쿨쿨이와 여느 부부들처럼 그토록 반짝거리던 몸의 대화를 나눴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저자의 경우, 어쩌면 특히 불면증 때문에) 판게아가 대륙으로 분리되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남편과 분리된 밤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저자에게 황금 시간대는 새벽 4시 15분이다. 아침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다. 불면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새벽 4시 15분쯤이 황금 시간대라는 말에 아마 동의하실 거다.
불면의 상황을 위와 같이 상상하는 것도 너무 멋지지 않은가? 무도회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지쳐 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촌스러운 의상을 입은 불면증 환자가 홀로 무대에 남아 이를 훤히 드러내고 웃으며 그루브를 타고 있다.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인 이 상황이란.
아마도, 불면을 보내다 보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혼자 그루브를 타며 밤을 지샌 적도 있을 것이고 온갖 상상력으로 만리장성을 쌓은 적도 있을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빛의 칼로 어둠에 무수한 구멍을 내는 불면증에 관한 문학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세상에 알려진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음식이나 치료방법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아래 링크 글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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