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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외국소설

에쿠니 가오리 낙하하는 저녁 줄거리,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

by 로그라인 2023. 6. 5.

낙하하는 저녁, 실연은 어떻게 치유될까? 

아내는 에쿠니 가오리의 찐 팬이다. 낙하하는 저녁(김난주 옮김, 소담 출판사, 2017)을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옛날에 한번 읽었다가 재미가 없어 그만두었던 전력이 있다.

며칠 전 아들이 왔을 때, 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길래 이번에는 제대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상 아들은 아마 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ㅋ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은 8년 동안 사귄 애인을 일 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에쿠니 가오리 프로필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꼽힌다.
1964년 동경에서 태어나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 상을 수상했다.

문학상 수상작으로는 <반짝반짝 빛나는>(1992년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 <나의 작은 새>(1999년 로보우노이시 문학상), <울 준비는 되어 있다>(2004년 나오키상), <잡동사니>(2007년 시마세 연애문학상), <한낮인데 어두운 방>(2010년 중앙공론문예상)이 있다.

그 외 <냉정과 열정 사이>, <낙하하는 저녁>, <도쿄 타워>, <언제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제비꽃 설탕 절임>, <장미나무 비파나무 레몬나무>, <수박 향기>, <모모코>, <웨하스 의자> 등이 있다. 

낙하하는 저녁 줄거리

리카는 다케오와 연애한 지 8년이 되었다. 다케오는 소규모 광고 회사에 다니고, 요구르트와 섹스와 죤 어빙을 좋아하는 체격이 크고 자상한 사람이다. 벌써 10년 전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 다케오는 럭비 선수였다.

하지만 다케오는 만난 지 겨울 사흘밖에 안 되는 스물일곱 살 여자 하나코 때문에 리카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갑작스럽게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버린다. 낙하하는 저녁에서 리카와 다케오는 나이가 나오지 않지만 아마 삼십 대 초반쯤일 것이다.

헤어질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리카는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그를 그리워하며 변함없이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별 후에도 다케오는 사흘에 한 번씩 꼭꼭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그가 청소를 한다고 하면, 리카는 다케오를 생각하며 집안 대청소를 한다. 

그런 나날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밤 12시 반쯤, 다케오를 그녀로부터 빼앗아 간 하나코가 현관 벨을 누른다. 하나코는 집세 16만 엔을 리카 혼자서 부담하기에는 무리니까 자기가 들어와 같이 살면서 공동부담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넉살 좋게 이야기한다.

리카는 그녀의 제안이 어이가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질투가 났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다케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녀를 받아들인다.

하나코의 일상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였다. 짐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겉옷 몇 벌과 속옷, 신발 두 켤레, 칫솔, 치약, 껌, 라디오, 책 한 권 , 담요 한 장, 로션 한 병, 립스틱 한 개, 그게 전부였다. 따라서 집안 풍경은 하나코가 출현하기 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45쪽)

하나코는 아파트에서 늘 라디오를 듣거나 누워서 우유를 마시면서 만화를 보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그녀는 일주일이나 열흘씩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부재가 리카에게 무겁게 내려앉는다.

뒤에 알고 보니 하나코는 마흔일곱 살 나카지마 씨 초대로 쇼냔의 별장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고, 리카가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생 나오토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와 긴 동거를 하면서 행방불명이 된 거였다. 

또 하나코가 다케오를 만나기 전 애인이었던 카츠야(카츠야는 다케야의 친구이다)를 다시 사귀느라 리카의 아파트에서 종적을 감춘 적도 있었다.

이즈음 광고 회사 영업 일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다카오는 일할 의욕이 없다며 회사를 그만뒀다고 리카에게 말했고, 하나코는 어리광 부리는 남자는 질색이라며 더 이상 다카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리카에게 말한다.

낙하하는 저녁 98쪽
낙하하는 저녁 98쪽

하루는 카츠야 씨의 부인이 리카의 아파트 현관 벨을 눌렀다. 카츠야 부인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식으로 웃고, 어떤 식으로 얘기하는지 한 번은 하나코를 만나고 싶었다고, 당신도 만나고 싶었다"라고 말했지만 리카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간 여자와 살 수 있을까, 하고 나라도 찾아가 봤을 것 같다. ㅠ

낙하하는 저녁에는 에쿠리 가오리 소설다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결혼을 해서 홍콩에 간 리카의 친구 료코다. 그녀는 이번에는 스물다섯 남자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전화로 주고받는 친구다.

리카의 상태가 비정상적이고 우울하다고 짐작한 료코가 언제 한번 홍콩에 놀러 오라며 항공권을 보낸다. 때마침 하나코가 사라지고, 리카와 다케오, 그리고 카츠야까지 이번에는 하나코가 어디로 갔을까 다들 몹시도 애를 태운다.

그들은 하나코가 항공권을 몰래 갖고 홍콩으로 날아가서 리젠트 호텔에서 당당하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는 걸 한참 후에 알게 된다.

낙하하는 저녁에서 하나코라는 캐릭터는 마치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의 주인공 금복이처럼 그녀를 본 모든 남자들을 그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부할 수 없는 체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케오도, 나오토의 아버지도, 그리고 홍콩의 그 누군가도 그녀에게 반해 리젠트 호텔에 그녀를 모셨을 것이다. 하나코는 전체적으로 탄력 있고 자그마한 인상이었고 얼굴은 예쁜데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야만적인 그런 여자였다.

리카는 다케오와의 추억이 담긴 앨범을, 그간 펼쳐보지 않았던 그 앨범을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겨보았다. 아니 바라보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그것은 그저 기록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리곤 다케오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 신청을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지만,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새롭게 좋아 수 있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케오하고 두 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하고 같이 잘 수도 있어."(181~182쪽)

리카의 말에 다케오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그야말로 이상한 말이로군", 하고 리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낙하하는 저녁 결말

하나코가 홍콩에서 돌아온 후, 리카는 다시 예전처럼 그녀와 일상을 함께 한다. 다케오 씨와 카츠야 씨, 그리고 그의 전부 인이 리카의 아파트에 놀러 온다고 한 날, 하나코가 그녀에게 소냔의 별장으로 같이 도망치자고 했다.

리카는 소냔에서 하나코와 초밥을 먹고 해변을 산책하고 깊고 조용한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음 날 하나코가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나카지마 씨가 전했다. 리카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야기들을 하나코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가 늘 곁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리카는 다케오를 찾아가 그를 강간하는 것처럼 강제로 땀벅벅이 되어 그와 섹스를 하고는 15개월 전 다케오가 그녀에게 말했던 "이사할까 봐."를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고 그를 떠난다.

낙하하는 저녁 독후감

소설을 다 읽고 아내에게 이건 소설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아내가 어이없다는 왜?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음, 리카가 어떻게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없고, 또 하나코가 자살한 이유도 전혀 안 나와 있잖아? 라고 했더니 마누라 왈, 바보야, 이 소설은 그렇게 읽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읽는 게 아니라니? 아무리 소설가라도 작품의 중요 캐릭터를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그렇게 막 없애면 쓰나? 했더니, 마누라 왈, 그냥 아 죽었구나 생각해! 나는 하나코가 자살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아 그녀가 자살했구나 자연스럽게 와닿던데, 이러는 거였다.

뭐, 어쨌든 남자와 여자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공감 포인트가 넘 다르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하긴, 하나코는 가방하나 들고 자유롭게 떠나곤 했으니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에이 아무리 자유분방하다고 해서 그렇게 사람을 죽이면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낙하하는 저녁은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비 추천하는 소설이다. 아, 물론 이런 소설류를 좋아하는 남자도 많을 것이고, 싫어하는 여자도 많을 것이니 속단은 하지 마시고. 뭐든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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