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공방/고전소설

윌리엄 포크너 음향과 분노 혹은 소리와 분노

by 로그라인 2022. 8. 2.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1929)는 다 읽기 어려운 장편 소설이고, 설령 다 읽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읽었는지 여전히 혼란스러운 소설이다.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펴낸 <소리와 분노>를 읽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해했고, 지루했으며, 끝내 온전히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음향과 분노로 가득하고 아무 뜻도 없다"를 인용하여 소설의 제명을 삼았다. 소설의 배경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콤슨 집안의 몰락을 다룬 이야기이다. 한 집안이 몰락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을 것이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포크너는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지 않고 낯선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뒤섞여버린 시간들 속에서 독자들은 지금 자기가 읽고 있는 문장이 누가 하고 있는 이야기이고, 언제 일어난 일인 지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음향과 분노 등장인물과 줄거리

등장인물

내가 파악한 <음향과 분노> 혹은 <소리와 분노>의 줄거리를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등장인물을 보면 제이슨 콤슨 3세와 캐롤라인 부부가 있다. 그들에게 세 자녀가 있다. 장남 퀜틴, 장녀 캐디, 그 아래로 아들 제이슨과 아들 벤지(벤자민)이다.

그리고 콤슨 가의 하녀 딜지 깁슨이 있다. 그녀에게는 버시와 티피, 러스터라는 세 아들이 있다. 독자들은 이 세 아들 중 누가 벤지를 돌보느냐에 따라 소설 속 시간대를 유추해볼 수 있다고 역자는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그 외 이탤릭체를 만나면(문학동네 판에서는 색깔로 구분)  시간 이동이 일어나는 뜻이다.

간단 줄거리

1장(1928년 4월 7일)은 지적 장애를 가진 벤지가 화자다. 서른세 살이지만 세 살 아동의 지능을 지녔다. 1898년부터 1928년까지 있었던 일들이 물리적인 시간 흐름과 관계없이 벤지의 의식 속 기억의 언어로 뒤죽박죽 전개된다.

벤지는 어렸을 때부터 나무 냄새가 나는 누나 캐디를 잘 따랐지만, 나무 냄새가 사라진 캐디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여 벤지를 일찍이 떠나간다. 1장에서 벤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거세당한 일, 콤슨가의 몰락이 실루엣처럼 묘사되고 있다.

책 표지
이 소설을 왜 빌려왔을까?

2장의 화자는 콤슨 가의 장남 퀜틴이다. 벤지 몫의 목초지를 팔아 하버드에 진학한 퀜틴은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동생 캐디에게 실망을 하고, 캐디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고, 캐디와 근친상간을 했다고 주장하다 끝내 다리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3장의 화자는 콤슨 가의 셋째 제이슨이다. 캐디가 낳은 딸 퀜틴(캐디는 오빠 퀜틴의 이름을 자기의 딸에게 붙여 주었다)을 괴롭히고 캐디의 돈도 갈취하는 막돼먹은 남자다.

4장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하인 딜시는 찬송가가 울려 퍼질 때 콤슨 가의 몰락을 슬퍼하고 십자가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퀜틴이 제이슨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엄마에게서 제이슨이 갈취한 돈을 들고 애인과 함께 도망치는 일, 러스터가 마차에 벤지를 태우고 가다가 낭패를 보는 이야기들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진다.

음향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에 대한 평가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쓴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보르헤스나 카르팡티에와 같은 작가들이 없었어도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포크너가 없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알베르 카뮈는 윌리엄 포크너를 아래와 같이 극찬했다.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19세기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자, 서양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창조자의 한 사람"

<음향과 분노>를 읽은 독자들이 세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자, 윌리엄 포크너는 그럼 네 번을 읽어라고 했다. 저명한 포크너 비평가인 클리앤스 브룩스는 어떤 구절들은 자기가 보기에도 너무 내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아마도 <음향과 분노>는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가의 소설일 것이다. 내게 문학작품은 수수께끼가 될 수 없다. 인생은 덧없이 짧다. 편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 내게 문학적인 감수성이 없음을, 문학적인 재능이 없음을 탓하며 그만 <소리와 분노>를 내려놓는다. 

참고할 만한 글

헤르만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헤세의 삶과 문장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