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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한국소설

칼의 노래, 김훈 첫 장편 소설 기증하며

by 로그라인 2022. 8. 7.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도서관에 기증했다. 칼의 노래는 김훈이 2001년 발표한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이다. 칼의 노래는 오늘의 김훈을 있게 했다. 며칠 전 도서관 문학 코너에서 너덜더널한 칼의 노래를 봤었다. 칼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보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김훈은 소설 가로서보다 에세이스트로 명망이 높고, 보수주의보다 허무주의가 그 본령인 작가다. 김훈의 지겨운 밥벌이의 경로는 신문사 기자에서, 에세이스트로, 그리고 소설가로 진화했다. 종착점은 소설가이지만, 김훈은 역사 에세이스트에 가깝다. 

청춘의 한 모퉁이에서 그를 좋아했고, 그의 문장을 탐독했었다. 이름에 쓰는 '훈'이라는 한자도 같아 친밀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만, 추억이 스린 칼의 노래를 그만 놓아줄 때가 된 것 같아 도서관에 기증했다.

칼의 노래 책표지
그간 소장해 왔던 칼의 노래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한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을 거듭했다는 작가의 일화는 글 쓰는 자의 숙명을 여실히 드러낸다. 

칼의 노래 첫 단락
칼의 노래 첫 단락

칼의 노래, 전체적인 톤에 비추어보면 꽃이 피었다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언명이 아니라 기자의 언명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느낀다. 작가라면 당연히 '꽃은 피었다.'라고 했었야 했다.

작가 김훈은 버려진 자의 슬픔을 안다. 이순신은 용과 고기가 감동하고 산 가리켜 맹세하매 초목이 안다고 했다. 김훈은 그런 이순신을 오랫동안 사모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설을 기어이 썼다. 김훈은 누구보다 검을 숭상한다. 이순신도 검을 숭상했으므로, 지금에 와서 이순신에 대한 전기 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김훈일 수밖에 없었다. 

김훈은 누구보다 '일휘소탕 염혈산하'의 세상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청춘의 한 때에는 누군들 이런 객기가 없었으랴. 그러나 성인, 이순신은 이 마음으로 전사했다. 김훈은 그 마음을 소설 칼의 노래에 담았다. 

“이걸 알아야 돼. 칼이 펜보다 강한 거야. 세상에 어떻게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있어? 칼 쥔 놈들은 칼이 강하다고 말 안 해. 왜냐하면 본래 강하니까.”
- 김훈(한겨레 21, 2000년 09월 27일 제327호 김훈 인터뷰 중)

김훈은 칼이 펜보다 강한 거라고 오랜 전 말했었다. 그가 젊은 시절 전두환에게 부역하는 글을 썼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예술가는 죄가 없으니까, 시대를 잘 못 태어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역시 돌이켜보면, 청춘치고는 참 구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의 노래 1, 2권, 서두에는 이순신의 시조가 실려 있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참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한산도 야음이라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내가 기러기라는 생각이 든다. 통영에 가본 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현재의 통영 바다는 여는 바다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면서 깊은 생각을 했다. 섬찟하다. 작가 김훈은 그런 이순신의 칼을 그리워하는 내면을 칼의 노래에 담았다.

칼의 노래 마지막 문장
칼의 노래 마지막 문장

아무튼, 작가 김훈은 이순신의 장렬한 최후를 놀라우리만치 정제된 문장으로 그 허무함을 유려하게 묘사했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자살론에 무게를 두고 썼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이성계처럼 그가 조선의 왕이 되었을까? 그랬다면 조선의 역사는 전혀 달랐을 것이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다른 페이지를 아마 넘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끝을 맺겠다'라고 했다.

청춘의 한 모퉁이에서는 이 말이 참 멋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는 꼰대의 언표였음을, 검을 신봉하고, 가부장제에 목숨을 거는 지나간 시대의 허울이었음을 실감한다. 지난날에 했던 그의 언사는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고 역사가 됨을 김훈은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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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 김훈(한겨레 21, 2000년 09월 27일 제327호 김훈 인터뷰 중)

작가 김훈의 부친은 김구 선생의 비서였으나, 술꾼으로 전락했다. 김훈이 느겼을 가장으로서의 비애를 최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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