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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방/성장소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정연철의 가장 시적인 위로

by 로그라인 2023. 5. 7.

정연철의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위즈덤하우스, 2021)는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열일곱 살 소년 겸이의 성장기를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 것이 재미있을 때마다 내 정신력 수준은 딱 십 대인가 싶을 때가 많다. ㅎ

책 뒤표지에 2021 대구 올해의 책, 2021 청소년 북토큰 선정 도서라고 되어 있길래 작가가 대구 출생인가 찾아봤는데, 대구에서 국어교사로 일하시는 분이었다. 

작가 정연철 소개

197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푸른 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에 동시가 당선되고,《어린이와 문학》에 동화가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동화 <생중계, 고래 싸움>, <주병국 주방장>, <똥배 보배>, 동시집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꽈배기 월드>, 청소년 소설 <마법의 꽃>, <울어봤자 소용없다>, <나는 안티카페 운영자> 등을 펴냈다.

책표지
책표지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줄거리

겸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는 슬픔을 겪는다.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던 아빠는 장례식장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겸이는 그런 아빠를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다.

겸이가 H라고 부르는 아빠는 겸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인 것 마냥 시골로 이사를 간다. 겸이에게 이름도 생소한 동산 군 동산읍. 읍내 변두리에 위치한 이층짜리 주택에 살게 되지만 겸이는 H와 말을 썩지 않고 생활한다.

새로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도 겸이는 여전히 '조커'로 불린다. 겸이는 조커처럼 웃는 얼굴이라 기분이 나쁠 때도 히죽히죽거리는 것으로 보여 놀림을 당한다. 

겸이는 사람은 죽어 별이 된다는 말을 무조건 믿으며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엄마를 찾고 그리워한다. 어느 날 H가 "언제까지 말 안 하고 살 작정이냐? 아빠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 줄래?"라는 말에 겸이는 무자비하게 쏘아붙인다.

"필요할 때 없었잖아요. 운동회 때, 학예회 때, 태권도 단증 딸 때, 입학식 때, 졸업식 때, 내 생일 때! 그때마다 없었다고요. 앨범 뒤져 봐요. 늘 언제나 엄마랑 할머니뿐이었다고요. 어떨 땐 혼자였다고요. 
(···)
"아빠?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역겨워. 지난봄 결혼기념일, 엄마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암 투병 중에 엄마가 정성껏 준비한 뮐푀유나베가 다 졸아들어 냄비가 새까맣게 탄 거. 엄마 속은 더 시커멓게 탔을 걸. 하기야 이런 이야기 꺼내 봐야 뭔 소용이겠어. 이제 엄마는 없고 그쪽도 나랑 무관한 사람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 속으로 뜨끔했다. 어, 나도 우리 아이들 운동회 때, 학예회 때 태권도 단증 딸 때 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세상의 아빠들은 아이 행사 때 되도록이면 꼭 참석하시길, 나중에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ㅠ

그러다 어? 나는 중학교 졸업할 때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도 당사자인 내가 졸업식에 가지도 않았는데, 요즘 애들은 그게 뭐 대수라고 별 걸 다 기억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고등학생이 엄마 찾아 삼만리도 아니고, 감수성 예민한 겸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겸이에게는 시가 찾아왔다.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랬듯이 겸이에게 어느 날 시가 찾아왔고, 외롭고 힘들 때마다 겸이는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위로를 받는다. 소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겸이가 시와 친숙해지고 시로부터 위로 받는 과정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하나 없었던 겸이게 은혜 칼국수집 손녀, 은혜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은혜의 찰진 갱상도 사투리가 읽는 내내 웃게 만든다.

겸이는 어떻게 엄마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아빠와 화해하게 될까? 아빠는 왜 가족을 등한시하고 세상을 떠돌게 되었을 까? 그리고 시골 소녀 은혜와는 어떤 관계로 발전할까? 이 궁금증으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결말

이 소설은 내 예상과는 완전 다른 결말을 끝이 났다. 내 예상은 이랬다.

즉 겸이 아빠가 가족을 등한시 한 이유가 겸이 엄마에게 있으리라 예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 겸이가 아빠를 받아들이고, 또 그런 엄마조차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이 어디까지나 청소년 소설이라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ㅋ
겸이 아빠가 세상을 떠돈 이유는 설득력이 아주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뭉클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뭐랄까,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것은 시(詩)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 파블로 네루다

시(詩)가 내게로 오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제각기 인생에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영겁의 세월이 쌓이고 쌓여서 시작도 끝도 모르는 그 아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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