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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상/독서, 글쓰기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엘렌 식수의 글쓰기 3일 특강

by 로그라인 2022. 7. 24.

엘렌 식수 글쓰기 특강,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엘렌 식수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풍월당, 2022)은 1990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비판이론연구소가 주최한 웰렉 도서관 비판이론 강연에서 엘렌 식수가 3일 동안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제목으로만 봐서는 글쓰기 실용서일 것 같지만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은 전혀 다른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차라리 위대한 작품들에 대한 탈구조주의 비평 및 분석에 가깝다. 엘렌 식수가 텍스트로 삼은 것은 브라질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러시아 시인 마리나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토마스 베른하르트, 프랑스 소설가 장 주네,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이다.

엘렌 식수 소개

프랑스의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 극작가, 시인, 문학 평론가 겸 탈구조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이다.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자크 데리다와 자크 라캉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다. 데리다와 탈구조주의 비평 및 분석 방법론을 함께 구상하며 평생에 걸쳐 교유하며 공동 집필했다

프랑스 68 혁명 때, 파리 제8대학 설립을 주도했고,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여성학연구소를 설치했다. 1970년대 프랑스 페미니즘 흐름을 이끈 중심인물로서, 1975년에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메두사의 웃음》을 출간했다. 시와 소설, 희곡, 문학이론, 예술비평 등 9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출간했다.

목차 

편집자의 말

망자의 학교
꿈의 학교
뿌리의 학교

옮긴이의 말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후기

엘렌 식수에게 글쓰기는 다른 세계에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다. 그에게 글 쓰기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하고, 독서는 그러한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엘렌 식수가 제안하는 글쓰기 학교는 세 단계이다. 바로 망자의 학교, 꿈의 학교, 뿌리의 학교이다. 엘렌 식수는 모든 위대한 글은 깨부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된다. 망자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하고, 죽음을 통해 그곳에 갈 수 없다면, 꿈꾸기를 통해 가보아야 한다.

작가는 죽음과 꿈꾸기를 통해 다른 세계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이다. 엘렌 식수에 따르면 우리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이 우리를 품고, 특정 순간에 우리를 떨어뜨리듯이 글을 쓰는 주체 또한 작가가 아닌 글 자체일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장자의 호접몽 같기도한 글쓰기의 세계라고 할까.

책 표지
책 표지

그러니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은 지극히 난해하고 읽기 힘들다.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꿈을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실감할 수 있을까? 어젯밤 꾼 꿈을 언어로 명료하게 설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엘렌 식수가 말하는 글쓰기의 세계도 그렇다. 

엘렌 식수가 비유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카프카의 편지를 다소 길지만 재인용한다. 인용한 편지는 답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친구에게 카프카가 보내는 답장이었다. 카프카는 이렇게 답했다. "미안해, 하지만 책을 읽는 중이었어. 너무 중요한 책이라 덮을 수가 없었어. 늘 똑같은 폭력적인 관계지. 책이 먼저, 그다음이 너."라고.

"난 우리를 해치고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통을 후려치는 충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읽겠나? 자네 말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세상에, 책이 아예 없으면 그렇게 행복하겠지.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란 우리가 쓸 수 있는 책이겠지, 꼭 써야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재앙 같은 영향을 주는 책이 필요해. 가슴 깊이 슬프게 하는, 자기보다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 같은 책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자살 같은 책이 말이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어."
- 1904년,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 쓴 편지 중에서

지난 며칠 동안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을 하루에 한 꼭지씩만 읽었다. 읽을 때마다 문장이 어디론가 달아났고, 미끄러졌다. 엘렌 식수가 말한 세계에 반절의 반절도 닿지 못한 느낌이다. 아득히 먼 곳, 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의 나라에서 "바보, 달을 가리켰는데, 왜 자꾸 내 검지만 보기만 하면 어떡해?"라고 깔깔거리며 희롱하는 엘렌 식수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망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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