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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KTX가 멈췄고 국가에 대한 나의 신뢰도 멈췄다

by 로그라인 2022. 11. 7.

코레일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어제(6일) 발생한 용산역 무궁화호 열차 6량이 선로를 이탈하는 대형 사고로 오늘까지도 복구를 완료하지 못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걸 우리고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후 12시 52분 대전행 KTX를 타러 태평하게 역으로 갔더니,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장내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흐미.

12시 52분 출발 예정이던 KTX 210호는 무려 78분 지연된다는 방송이었다. 1시간 18분은 역에서 기다리기도 그렇고 집에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미루어 두었던 외화통장을 다시 살리러 은행에 갔다. 장기 미거래로 휴면계좌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ㅠ

열차지연 표시
195분 지연 예상이랜다.

은행에서 통장을 살리고 나오니 대전행 KTX 210호는 지연 시간 195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역무원 말로는 지연시간 78분은 아주 보수적으로 책정한 거라 더 빨라질 수 있기에 역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78분을 순식간에 195분으로 늘려 버리는 게 보수적인 건가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195분이면 3시간 18분이다. 아들은 오후 4시에 시작해 7시에 끝나는 3시간짜리 강의를 포기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대전으로 가기로 하고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왔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아들은 꽤 당황하는 눈치였다. 주말에 오면 보통 일요일 날 가는데, 이번에는 월요일 가겠다고 기차표를 예매해 왔으니 말이다.

역으로 갈 때도 아, 재미없는 경제학 수업을 들어야 하나 푸념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그런 말 했던 것도 미안한 눈치였다.

어쨌든 집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는데, 아들이 갑자기 "아빠, 갑자기 100분 지연으로 바뀌었어!"라고 흥분했다.

엥, 뭐야? 195분에서 순식간에 95분을 단축할 수 있단 말이야? 코레일은 열차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안내하는 거야? 

기차역 전경
코레일이 멈췄다.

빠르게 시간 계산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100분 지연이면 12시 52분 기차였으니까, 2시 32분에 출발한다는 말.

그럼 대전역에 도착하면 4시 55분이고 택시 타면 강의실에 5시 15분에 도착할 수 있다. 강의를 1시간 45분은 들을 수 있다. 어여 역으로 가자!

집에서 역까지 비상 깜빡이를 넣고 카레이스를 했다. 신호등도 무시했다. 30분 거리를 10분 만에 주파한 끝에 역전에 2시 27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역전에 도착하자마 아들은 가방을 둘러매고 승강장으로 냅다 뛰었다. 승강장으로 열차가 진입하고 있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들은 가까스로 기차를 탔다. 5시 반쯤 강의실에 도착했으려나, 하고 젠리를 보니 아직 이동 중이라고 떴다.

아니 왜? 기차가 가는 중에 또 지연되어서 7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진짜 울화통 터질 일이다. 아 코레일.

7일 오후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역 인근 철로에서 한국철도공사 긴급 복구반원들이 철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코레일의 대형 사고들

그래서 관련 기사를 찾아봤더니 코레일은 사고 20시간이 훌쩍 넘은 퇴근 시간 직전이 되어서야 복구를 마쳤다고 한다.

이번 대형 탈선으로 운행 중지 또는 지연된 KTX, 새마을호 등이 195편에 달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을까 싶다. 올해 들어 코레일 탈선 사고는 12건이나 발생했다. 

코레일의 사고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3월에는 대전 차량사업소에서 열차 하부를 점검하던 50대 노동자가 객차와 레일 사이에 끼여 사망했고, 7월에는 서울 중랑역에서, 10월에는 경기 고양 정발산역에서 노동자가, 11월 5일에는 경기 오봉역에서 30대 노동자가 기관차에 치여 숨졌다.

사망사고만 4건이다.

문제 투성이가 아닐 수 없다. 코레일 사장은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업장으로 공공기관장 중 처음으로 입건되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코레일은 결코 믿을 만한 철도공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코레일 관리감독 책임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있다.

코레일은 KTX 예매자들에게 탈선사고로 인하여 열차가 정상 운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자도 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갈수록 후진국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간 너무 믿고 안이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국가에 대한 나의 신뢰도 멈췄다. 국가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 카레이싱은 별무소용이 되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저녁 먹고 느긋하게 가는 건데 신호위반으로 딱지 받을 일만 남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왜 아침 출근시간부터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지 못했던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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